11월 14일 한미 양국의 무역·안보 협상 결과물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확정돼 공개됐다. 이재명 정부는 핵잠수함 건조 승인 등을 주요 성과로 내세운다. 지난 10월 30일,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계획을 승인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이에 감사를 표하며 “우리 군의 역량이 크게 강화돼 한반도 방어를 한국이 주도하게 되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방위 부담도 경감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도 “외교적 쾌거”라며 집권 초기의 큰 업적 중 하나로 이 상황을 간주하고 있다.
“평화용” 핵 잠수함은 없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핵 잠수함이 ‘평화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핵잠수함 도입과 군비 증강은 가뜩이나 첨예해지고 있는 동아시아 군비 경쟁과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일조할 것이다. ‘힘에 의한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 어느 국가가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면, 다른 국가도 더 강력한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은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 논의를 빌미로 핵무장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고, 중국 역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중국 잠수함 추적을 미국 정부 설득의 주요한 근거로 들었다. 정부는 한국을 대중국 전초기지로 만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에도 합의했다. 미국 해군참모총장 대릴 커들은 한국의 핵추진 공격 잠수함이 “미국이 핵심 경쟁적 위협으로 규정[한] … 중국을 억제하는 데 활용될 것임은 자연스러운 예상”이라며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냈다. 정부는 미·중 경쟁에서 미국을 확고히 편들겠다고 선언하며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뛰어들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데에 일조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서민들 부담 가중시킬 이재명의 ‘선택’
이번 협상은 트럼프의 압박으로 시작됐지만, 이재명 정부는 단지 “비자발적”으로 끌려다니는 협상을 하지 않았다. 정부는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한국의 국력과 위상을 강화하고자 미국 제국주의에 적극 협력하기로 선택했다.
한국 지배계급은 군사력을 강화해 자본의 해외 시장 진출과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를 꾀한다. 자본주의 국가들 간 경쟁 시스템 속에서 한 국가의 군사력은 그 나라 자본가들이 세계시장에서 벌이는 경쟁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도 자본주의 국가간 경쟁의 맥락 속에서 한국 국가의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핵잠수함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가들과 친기업∙우파 언론들이 이번 합의에 기대를 드러내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서 한국 정부가 지켜낸 ‘국익’에 노동자 서민의 이익은 포함돼 있지 않다. 경제적∙지정학적 위험 부담이 서민층에게 떠넘겨질 것이다. 당장에 핵잠수함 건조에는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다. 5천톤급 잠수함을 2030년대 중반까지 4척 이상 건조하는 것이 목표인데, 예상 사업 비용만 20조 원을 상회한다. 이 돈이면 청년들에게 공공 일자리와 공공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지원할 수 있다.
지금 노동자들은 고물가와 경제 위기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데, 이재명 정부는 ‘국민 주권’을 표방하고도 노동자들의 주거, 의료, 교육, 복지에 쓰여야 할 재원을 살상 무기 도입에 쏟아붓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에 맞섰던 대중들의 평화 염원을 저버리고 있다. 2026년 국방비를 전년 대비 8.2%나 증액하며 윤석열 정부 시절의 증가폭(3~4%)을 훨씬 능가하는 군비 확장을 감행하고 있다. 이번 중동 순방에서는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방위’ 산업 협력과 AI 협력을 강조했다. 폴란드에 K2 전차를 수출하고 ‘K-방산’을 미래 먹거리로 찬양하는 모습은 윤석열 정부가 수행해 온 “죽음의 상인” 역할과 무엇이 다른가?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더한층의 군사적 경쟁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이재명 정부의 핵잠수함 도입과 군비 증강에 반대해야 한다. 천문학적인 돈을 전쟁무기를 만드는 데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위해 써야 한다. 진정한 평화를 이루려면 정부의 친제국주의 행보에 맞서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연대와 투쟁이 필요하다.
2025년 11월 26일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