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후보들이 낙선했지만, 극우 반대 투쟁이 긴요함을 보여 주다

윤석열의 쿠데타 미수와 파면으로 인해 치러진 대선에서 “내란 세력 심판”을 앞세운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재명 후보는 계엄 해제와 윤석열 탄핵 운동에 앞장섰다. 이재명이 많은 득표차로 당선된 것은 이번 대선을 좌우한 핵심 쟁점이 쿠데타 응징 염원이었음을 반영한다.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과 ‘내란’ 세력 청산을 기치로 한 반국민의힘 선거 연합을 이룬 이재명은 역대 대선 최대 득표인 1,728만 7,513표(49.42퍼센트)를 얻었다. 국민의힘 김문수보다 289만 표를 더 얻었다.

이재명 본인이 3년 전 대선에서 얻은 표에서 114만 표가 늘어났고, 전국적으로 골고루 득표가 늘어났다.

윤석열 쿠데타 기도를 사실상 비호한 김문수는 1,439만 5,639표(41.15퍼센트)를 얻었다. 윤석열·이명박·박근혜 등 전임 대통령, 한동훈·안철수 등의 반윤계까지 모두 김문수 지지로 결집했지만, 3년 전 윤석열 득표의 87퍼센트밖에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거리 극우와 윤석열, 국힘 사이에서 아교 같은 구실을 한 인물이 1,400만 명이 넘는 지지를 받은 것은 불길한 일이다. 국힘이 극우를 끌어들이며 그 자신이 극우적이 됐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김문수는 과거의 노동운동 경력을 이용해 자신이 서민을 대표한다는 극우 포퓰리즘을 보수적인 서민층을 결집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이준석은 국힘 측의 사퇴 압력에도 불구하고 291만 7,523표(8.34퍼센트)를 얻었다. 이준석은 선거 기간에 법질서 강조, 반중·혐중, 사회적 약자 경멸 등 극우성을 드러냈지만, 자신이 계엄에 반대하고 윤석열 탄핵에 찬성한 후보라고 떠들어 대며 반사이익을 얻었다.

역대급 투표 열기는 첨예한 좌우 양극화의 영향을 받았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79.4퍼센트로 1997년 대선(80.65퍼센) 이후 가장 높다. 투표자 수도 역대 최대다.

지난 대선과 비교하면 118만 명이 더 투표했는데, 이재명 표는 114만 표가 늘고, 김문수와 이준석을 합한 표도 윤석열보다 90만 표 늘었다. 두 극우 후보의 합계 득표율(49.49퍼센트)이 만만찮다.

쿠데타 정권 응징 염원이 많은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었지만, ‘샤이 보수’도 만만찮게 결집해 투표율이 올라간 것이다.

윤석열 정권 퇴진 경로를 헌정 절차 안으로 한정한 것도 우파 결집에 결과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 대선 투표일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딱 6개월이 되는 날이다. 윤석열 퇴진 운동은 그 절차를 준수하느라 사태를 더 빠르게 진행시킬 방법을 자기제한적으로 피했고, 헌재가 시간을 질질 끌면서 그 사건의 충격이 꽤 옅어진 데다가, 그 사이에 물타기할 시간도 많았다. 그 틈을 타서 극우 부상도 벌어졌다. 게다가 윤석열 헌재 탄핵 후 대중 투쟁이 멈추면서 대선 구도나 지형에 좌파적 영향을 미치기도 쉽지 않았다.(진보정당 표는 85만에서 34만으로 줄었다.) 이런 점들을 이용해 김문수는 서민 행세를 하며 핵심 쟁점 흐리기를 시도한 것이다.

선거로 극우를 한두 차례 이길 수 있어도 그 세력을 약화시킬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이번 대선 결과에 안도하면서도 극우의 성장 가능성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다.

출처: 극우 후보들이 낙선했지만, 극우 반대 투쟁이 긴요함을 보여 주다(〈노동자 연대〉 549호, 2025-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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