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당국은 최근 교무회의에서 인문대학 통폐합과 전반적 구조조정안이 담긴 2016학제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개편안에 따르면 사회복지학과, 재활학과가 학부로 통합되면서 정원이 총 10명 감축되고 인문대학은 인문콘텐츠학부로 개편되어 독어독문학과, 철학과, 종교문학과, 디지털문화콘텐츠학과의 정원을 각 12명씩 감축하게 된다. 특히 인문대학 소속 4개 학과는 기존정원이 32명에서 20명으로 줄어 상당히 규모가 줄어든다. 한편, 기존 학과의 정원은 줄인 채 ‘영상문화학과’는 신설한다.
이번 학제개편안은 교수회의는 거친 것이지만 해당학과 학생들과는 아무런 논의도 없이 설명회 한번으로 일방적으로 통보됐다.
학교 당국은 ‘학문적 융합’과 ‘생존전략’이 필요하다며 학제 개편안을 정당화 한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이 가져올 현실은 ‘인문학과 실용학문의 융합’이 아니라 취업률과 시장의 수요가 적은 기초학문의 축소와 인문학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진보대학을 자처해온 한신대 마저 기업의 입맛에 따라 학문을 구조조정 한다면 어느 누가 인문학과 기초학문을 양성하고 보호한단 말인가?
이런 식의 취업률과 기업 수요에 따른 학제 변화는 학내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 압력을 높이고 학생들에게는 경쟁을 강화시키고 안정적으로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한다.
박근혜 정부의 채찍질
한신대에서 벌어지는 학과 구조조정의 배경에는 박근혜 정부의 강도 높은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 있다. 정부는 학령인구가 감소한다는 명분으로 평가를 통한 차등적 정원감축을 강행하고 있다. 교육부가 올해 11월부터 추진하겠다고 하는 이른바 ‘대학구조개혁안’은 모든 대학을 평가를 통해 5등급(최우수, 우수, 보통, 미흡, 매우 미흡)으로 나누어 발표하고 최우수를 제외한 나머지 등급의 대학들은 등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정원을 감축하게 하고 2번 연속 ‘매우 미흡’대학으로 지정되면 퇴출시키겠다는 정책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이 정책을 추진해 대학 정원의 28%를 감축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대학의 수로 본다면 전국적으로 100여개의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하는 수준이다.
대학 서열화가 이미 고착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정부의 대학평가는 지방의 중소대학, 중하위권 대학들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최근 정부가 새롭게 발표한 대학평가지표에는 취업률, 재학생충원율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런 지표는 지방대와 인문•예술계열에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뿐만 아니라 ‘정원조정 및 계열(과) 조정’, ‘대학특성화 운영 현황’와 같은 지표는 대학들이 몇몇 돈 되는 학과에 집중하고 취업률이 낮거나 수익성이 낮은 학과를 구조조정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부는 지방의 중소대학들에게 지원을 강화하기는커녕 재정지원을 더 줄이고 정원을 더 많이 감축하도록 요구함으로써 대학간의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키고 대학간의 위계를 강화시킬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통해 대학 서열화를 강화해 재정지원을 더욱더 차등화하고 대학을 보다 기업의 필요에 맞추려 한다.
정부 정책에 편승해 구조조정 추진하는 ‘진보사학’ 한신대
이런 정부의 강력한 대학구조조정 추진에 한신대 당국은 선제적 대응을 통해 편승하고 있다. 학교 당국은 ‘정부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2016년부터 정원감축 시 학과별 평가를 통해 차등적으로 정원을 감축하겠다”며 대학평가지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이번 학제개편안이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한신대 당국의 자발적 선택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학내 구성원들은 이런 한신대의 구조조정 시도에 저항하면서 진보대학 한신대의 후퇴를 막기 위해 노력해왔다. 올해 상반기에도 학교 당국이 비민주적으로 날치기 처리 하려 한 ‘2015 학제개편안’을 교수들의 반대 투표와 학생들의 총회성사와 행동으로 막아냈다. 개별 대학에서 진행되는 구조조정이 대학 구성원들의 저항으로 저지되는 일이 많아진다면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에도 제동을 거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15 학제개편안의 원천 무효를 주장했던 교수회의가 2016 학제개편안을 직접 만들어서 통과시켜주는 후퇴를 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대학 구조조정에 원칙 있게 반대하지 않으면 결국 더 큰 공격을 막기도 어려울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은 2022년까지 매년 뒤로 갈수록 더 많은 정원을 감축하겠다고 계획하고 있으므로 한신대도 매년 더 많은 정원감축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것이다. 민주화와 실천지성의 역사를 걸어온 한신대 교수들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받아들인다면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도 효과적으로 막기 어려울 것이다.
학령인구감소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정부와 학교당국은 학령인구에 비해 대학이 너무 많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학령인구감소 논리 이면에는 대학의 등록금 수입 감소라는 진실이 숨어있다. 한국은 사립대 중심의 대학 구조인데다 등록금 의존율도 매우 높다. 이 때문에 학령인구 감소가 대학들의 재정위기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대안은 국•공립대를 늘리고 모든 대학에 고른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이다. 정부의 투자로 대학 공공성이 강화된다면 학령인구의 감소는 교원 1인당 학생수를 줄여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학 구조조정은 단순히 몇몇 학과의 정원을 줄이고 통폐합하는 결과만 낳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정원감축으로 등록금 수입이 감소한 사립대학들은 등록금을 인상하거나 대학 교수와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하거나 비정규직화를 확대해 비용을 절감하려 할 것이다. 또 교육에 대한 투자도 점차 줄어들어 대학교육의 질도 후퇴될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고 한신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대안은 한신대 교수, 학생 직원이 함께 단결해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에 반대하면서 정부에 투자를 요구하고 대학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시키는 일에 나서는 일이다.
2014.10.13
노동자연대 한신대 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