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세월호 유가족,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46일 동안의 목숨 건 단식을 중단했다. 진상 규명 특별법이 만들어져서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김영오 씨가 단식을 중단한 건 이 싸움이 “장기전이 될 것 같아서”였다. 정부와 우익들은 김영오 씨에 대한 욕설과 비방을 서슴지 않고 둘째 딸의 사생활까지 위협했다.
박근혜 정권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진실 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국가정보원이 김영오 씨 주치의를 불법 사찰한 일도 들통났다. 심지어 박근혜는 세월호 생존 학생들의 면담 요구도 외면했다.
적반하장으로 박근혜는 참사 원인의 일부인 친기업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도리어 확대하려 한다. 살아남은 유가족과 나머지 노동계급의 삶도 유린하겠다는 뜻이다.
적반하장
9월 1일 새누리당과 유가족의 3차 면담에서 새누리당은 ‘수사권·기소권을 가진 조사위원회는 위헌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법안 자체는 사회 주류의 일부인 대한변호사협회가 만든 것이다. 그리고 법학자 수백 명이 법리 상으로든 사법제도 상으로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의회 제도를 채택한 국가에서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는 한국 같은 경우가 오히려 더 흔치 않은 일이다.
새누리당의 온갖 더러운 방해 수작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김영오 씨가 병원에 실려간 6일 동안 동조단식자가 전국에서 약 3만 명에 이르렀다. 최근 KBS의 여론조사결과 수사권·기소권을 포함한 특별법을 지지하는 응답이 58.3%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38.6%보다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금속노조, 홈플러스 노조 등 조직 노동자들의 연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조직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이 확대돼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내는 일에도 쓰인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그 동안 대학생들도 방학 중에도 거리에서 행진을 하고 집회에 참가하며 세월호 유가족에게 힘을 보탰다. 대학에서도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의 연대를 건설하고 특별법의 정당성을 알리는 활동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이윤 경쟁 체제가 낳은 비극
세월호 참사가 이윤에 눈이 먼 기업의 탐욕 때문에 벌어졌다는 것은 자명하다. 자본가들은 ‘사고 없는 364일’을 위해 안전 장비를 마련하는 것을 낭비라고 본다.
유병언 같은 개별 자본가의 탐욕의 기저에는 이윤경쟁체제가 있다. 다른 기업보다 이윤을 더 벌어들이려면 안전 비용을 더 줄이고, 노후한 선박을 싸게 사서 불법 개조해 운항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우선순위도 기업주들의 안정적인 이윤 축적을 보장해 주며 지배계급에게 유리한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다.
자본주의에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끔찍한 비극은 재연될 수 밖에 없다.
모순에 빠져 기만적 행보 반복하는 새정치연합
지난 8월 25일,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이 3자 협의체(새누리-새정치-유가족) 구성을 거부했다며 ‘투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가족대책위가 7월 달에 3자 협의체를 요구할 때 새정치연합은 이를 거부했다.
유가족을 대리해 협상하겠다던 새정치연합은 유가족 뒤통수를 두 번이나 후려갈기는 야합을 저질렀다. 새정치연합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여야협상 쟁점으로 꺼내 놓은 적조차 없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새정치연합은 정부와 여당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흡수하려 하지만 기존 시스템을 위협하는 일은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한 경험이 있고, 구조적 정경유착과 부패 사슬의 (부차적)일부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이 조금도 양보하고 있지 않고 있는데다 기업주와 국가관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새정치연합은 좁은 입지 속에서 동요와 배신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여당의 ‘민생’ 압력에 새정치연합 내에서 다시 국회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한편 세월호 참사 대책회의 안에서 일부 지도자들도 이런 새정치연합에 기대면서 운동의 원칙과 힘을 약화시켰다. 한겨레의 ‘시민사회중재론’도 지금처럼 새누리당이 뻔뻔하게 나오는 상황에서 결국 유족들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더니
기업 구조에는 전력을 다하는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는 7월 30일 재보선 승리 이후 세월호 참사 진실 파묻기와 ‘친기업 경제 살리기’로 국면 전환에 올인해 왔다. 마치 유가족이 경제 살리기의 발목을 잡고 있는 듯 호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와 경기 위축은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서비스부문 소비는 오히려 증가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말하는 ‘민생’은 평범한 노동자와 서민의 생계를 뜻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기업 이윤 등 부자들의 수익을 가리키는 기업주들과 정치인들의 코드명이다.
돈벌이
그래서 박근혜가 안달하는 ‘민생’ 대책은 카지노와 영리 병원 허용, 크루즈산업 육성 등 기업주 돈벌이에 관한 것들뿐이다.
이런 ‘경제 살리기’ 기치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진보진영 내 온건파를 겨냥한 압박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심지어 이번 일을 “재난 재해 보험상품 개발 촉진 … 안전 산업 육성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구조 방기로 수백 명을 죽게 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사람의 생명까지 돈벌이로 삼겠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사고가 나든 말든, 구조를 하든 말든 보험상품만 많아지면 되냐”며 울분을 토했다.
정부의 6차 투자활성화 대책
전면적 의료민영화로 가는 길
박근혜 정부가 8월 12일 제6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온갖 이윤 지상주의 정책과 함께 의료 민영화를 더욱 밀어붙이는 내용이 포함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민영화와 규제 완화 등이 낳은 사건의 책임을 규명해 조금이라도 안전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애쓰는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
실험용 쥐
이번 계획에 따르면 대학병원은 의료기술을 상품화·특허화해서 영리 자회사(이윤추구적 기업)를 설립할 수 있다. 의료기술 개발에 동참한 의사들은 영리 자회사의 스톡옵션을 받을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의사들은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환자들에게 과잉 처방하게 될 것이다. 의료기술의 상품화·특허화는 병원비의 증가를 낳을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는 환자를 대상으로 암 발생 부작용이 큰 줄기세포 치료 등 임상실험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한다. 환자를 완전히 실험용 쥐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의료 편의와 연구를 명분으로 기업들에 환자의 질병정보를 보여 줄 수 있는 길도 터주고 있다.
영화 <식코>가 보여준 미래
민간 보험사가 해외 환자에게 병원을 알선하고, 진료 적절성을 평가하는 것도 허용해주겠다고 한다. 보험사 입장에서 적절한 진료란 ‘적게 보장하고 많이 돈을 받아내는 것’이다. 병원은 보험사에서 돈을 받게되기 때문에 이를 따르게 된다. 이는 전형적인 미국식 의료제도의 도입이다. 지금은 해외 환자에게만 적용하겠다고 하지만 곧 국내 환자에게도 확대될 것이다.
병원 내 메디텔(의료관광호텔) 허용도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높은 가격의 1~2인 병실을 늘리는 효과를 낸다.
심지어 정부는 제주도 영리병원 설립도 허가하려 한다. 정부는 최소한의 응급의료체계도 갖추지 못한 중국계 싼얼 병원 설립을 9월 안에 승인하려 한다.
노골적 영리 행위
이토록 노골적으로 영리 행위를 허용해주는 내용 때문에 박근혜 정부조차 이것이 “공급자(병원) 입장을 상당히 대변하는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의료 민영화로 삶이 피폐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여론은 70퍼센트대에 이른다. 7개월 만에 2백만 명이 의료민영화 반대 서명에 참여했고 병원 노동자들의 2차 파업 때는 하루에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많은 대학생들도 노동자들과 함께 서명을 받으며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뜨거운 여론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목소리를 확대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