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 정권 심판 정서가 압도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국민의힘 김태우는 9만 5492표(39.37퍼센트)를 득표해, 13만 7066표(56.52퍼센트)를 득표한 민주당 진교훈 후보에게 4만 표(17.2퍼센트)가 넘는 차이로 패배했다.
딱 1년 4개월 전 전국 지방선거에서 김태우는 13만 2121표(51퍼센트)를 득표해 당선됐었다. 1년여 만에 김태우는 3만 7000여 표를 잃은 반면, 민주당은 1만 2000여 표가 늘었다.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득표율은 윤석열의 대통령 국정수행 부정평가(55~60퍼센트)와 긍정평가 비율(35~40퍼센트)과 흡사하다.
이례적으로 투표율이 높았던 사전 투표(22.6퍼센트)가 윤석열 심판 투표의 핵심이었다. 사전 투표에서 진교훈이 압도적으로 앞섰다. 사전 투표 동별 개표 현황을 보면, 모든 동에서 진교훈은 김태우보다 갑절을 더 받았다. 한 동에서 34퍼센트를 득표한 것이 김태우의 가장 좋은 성적이다.
사전 투표는 주로 노동자들이 이용한다. 전국 선거의 경우에는 직장 근처에서 투표할 수 있고, 보궐선거처럼 투표일이 공휴일이 아닐 선거에서는 주말에 실시되는 사전 투표를 통해 미리 투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와 짜증
일개 구청장 선거였는데도 전국적 여론이 이 선거에 반영됐다. 강서구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를 지역 현안이 아니라 정권 심판의 관점에서 투표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 전가 공세에 대한 반감, 강경 우익화 흐름에 대한 경각심·분노·짜증이 표로 나타난 결과였다.
윤석열 자신이 이번 보궐선거를 전국 선거의 축소판으로 격상시킨 장본인이다.
사실 국민의힘의 입장에서는 지역 개발이 쟁점이 되고 전반적 무관심 속에서 선거가 치러져 보수층이 결집하는 것이 그나마 근소한 차이라도 이기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자신이 강서구청장 선거를 “전국 선거”로 만들었다. 그 덕분에 정권 심판 선거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선거 결과가 더욱 통쾌하다.
윤석열은 징역형 유죄 판결로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김태우를 대법원 확정 판결 석 달 만에 사면해 후보로 내보냈다. 오만방자한 짓이었다. 김태우는 자기 비위를 감추려고 약은 꾀를 부리다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관련 기사: 본지 476호,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윤석열 정부 심판 정서를 가늠할 척도’)
8월 이후 김태우의 사면·복권과 공천,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 등은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공정과 법 질서 운운이 완전한 위선이고 사기임을 보여 줬다.
사전 투표 직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김행의 청문회 줄행랑 사건도 사람들을 열 받게 했을 것이다. 언론 보도와 청문회 과정을 종합하면, 김행은 장관실이 아니라 탈세 등의 혐의로 경찰의 조사실로 가야 할 인물이었다.
게다가 경제는 더 나빠지고, 부자들은 감세 혜택을 받지만 복지 축소, 공공요금 인상 등 정부의 긴축 기조 탓에 서민층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독립투사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한 것도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가중시켰다.
이런 정서들이 차곡차곡 쌓여 김태우 낙선으로 이어졌다. 민주당 후보가 반윤석열 투표의 수단이 됐다. 지난해 구청장 선거와 비교해, 이번 보궐선거의 경우 투표자가 더 적고 후보도 일곱이나 됐는데도(지난해에는 두 명) 민주당 후보의 득표는 지난해 김태우의 득표보다 더 많다.
윤석열의 오만과 오판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정치적 위기 심화, 우익적 공세 지속
윤석열의 선거였고, 그 선거에서 참패했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정치 위기는 더 심화될 것이다.
개악 동력이 약화될 것이고, 여권 내에서도 윤석열 주도로 총선을 치르는 것은 난망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윤석열의 강경 우익화 흐름과 긴축 기조도 총선을 앞두고 도마에 오를 수 있다. 그런 노선이 특히 수도권에서 불리하다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친서방 제국주의적·친기업·우익적 기조들에서 물러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개악 프로그램 중 한·미·일 안보 공조 강화, 부자 감세, 긴축, 규제 완화 등은 실행되고 있는 반면, 윤석열이 애초 핵심 과제로 표방한 노동·연금·교육 개악은 시작도 못하며 지체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은 섣불리 양보 제스처를 취하려 하지 않을 듯하다. 그랬다가는 대중의 사기가 오르고 기업주들이 실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위기 상황에서 기업주들의 신망마저 잃는 것은 윤석열이 피하고 싶은 일이다. 그럴수록 정치 위기가 깊어지는 것이 윤석열의 딜레마다.
보궐선거 다음 날 오전, 국민의힘 최고위원회는 김행 장관 임명 포기를 윤석열에게 건의했다. 바로 그 시각에 검찰은 이재명을 백현동 개발 건으로 기소했다. 증거가 없어서 구속영장을 받아 내지 못했는데도 기소한 것이다. 정치적 반대파 공격은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모순된 신호는 윤석열 정부가 처한 난관을 보여 준다. 윤석열 정부가 정치 위기를 겪고 있지만 동시에 강경 우익적 태세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