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양
〈노동자 연대〉285호
원 기사 링크: https://ws.or.kr/article/22108
“강사법은 있는데 강사가 사라졌다. 해고 강사 살려 내라!” 5월 11일 오후 2시 대학교 시간강사, 대학원생, 대학생 100명이 서울 마로니에 공원 앞에 모여 구호를 외쳤다. 예상 밖의 무더운 날씨에도 집회는 활력이 있었다.
8월 개정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들의 시간강사 대량 해고와 강의 축소가 더욱 본격화할 조짐이다. 그 자체로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개정 강사법이지만, 대학들이 그마저 우회하려고 용쓰는 탓이다.
학생들 역시 대형 강의가 늘어나고 한 학기 수업 일수가 줄어드는 등 피해를 겪고 있다. 이에 시간강사들과 학생들이 집회를 통해 항의에 나선 것이다. 시간강사들과 학생들은 3월 23일에도 집회를 열었었다.
그러나 교육부는 벼랑으로 내몰린 시간강사들의 생존과 학생들의 교육의 질 하락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이날 집회에서는 해고된 강사들의 복직과 수업 축소 중단이 주된 요구로 제시됐다.
사회를 맡은 김어진 경기대 해직강사의 발언이 시작을 열었다. “1만 5000에서 2만 명. 해고된 강사들의 수라고 합니다. 6655개. 사라진 강의의 숫자라고 합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김어진 강사는 교육부를 강하게 규탄했다. “시간강사들에게 강사법은 구명조끼입니다. 삶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처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제대로 된 시행령을 마련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용섭 ‘강사제도 개선과 대학연구교육 공공성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강사공대위) 공동대표도 연단에 올라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교육부는 소극적인 대책으로 일관하지 말고 2만여 명의 교수들을 살리기 위한 대책을 내놓으십시오!”
김용섭 공동대표는 최근 감사로 비리가 드러난 고려대학교처럼, 대학들이 교육의 질 개선은 제쳐 놓고 엉뚱한 곳에 돈을 낭비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뒤이어 발언한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 협의회’(민교협)의 김귀옥 교수는 대학들의 꼼수를 폭로하면서 다른 전임교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집회를 마치고 참가자들은 종로를 거쳐 광화문광장으로 행진했다. 대열의 맨 앞에서는 시간강사, 학생, 대학원생들이 번갈아 가며 메가폰을 잡고 발언과 구호 선창을 이어 나갔다. 문재인 정부 하 고등교육의 현주소에 대한 시원한 폭로와 규탄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대학로를 출발해 광화문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원본] [원본 정보]
연대
분노에 찬 학생들의 연대 발언이 두드러졌다.
가령 ‘연세대 강사법 관련 구조조정 저지 공동대책위원회’의 오제하 학생은, 5000억 원에 이르는 적립금을 쌓아 놓고 있으면서 강사들에게 쓸 돈은 없다는 연세대 당국의 기만적 행태를 비판했다.
또한 기형적인 수강 신청 제도와 강의 수 축소가 맞물린 상황에서 학생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도 생생하게 폭로했다. 예컨대 꼭 들어야 하는 강의를 수강하는 데 실패한 학생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강의를 암거래하기도 했다. “저는 한 과목의 가격이 50만원까지 치솟은 것도 본 적 있습니다. 비싼 등록금 내고 학교 다니는 것도 모자라서, 강의 들으려면 따로 돈까지 내야 합니까?”
자신의 강의가 거래된 적이 있었던 강사들은 이 발언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이러한 폭로에 놀라 발걸음을 멈추고 발언을 경청했다.
한 중앙대 학생은 학교 당국이 강사 수를 절반으로 줄이려고 시도한 것을 성토했다. 작년 8월 중앙대 당국은 1200명 수준이던 시간강사를 500명까지 감축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한 해 4000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운용하고, 무려 2373억 원을 새 건물을 짓는 데 사용한 적도 있으면서 말이다! 강의 규모를 키우고 졸업 학점을 줄이는 등 온갖 꼼수가 난무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개정 강사법 시행이 임박한 지금, 앞으로도 대학들은 강사들과 학생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려 들 게 분명하다. 대학과 기업의 연계를 강화하고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는 문재인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강사들과 학생들이 굳건하게 연대하고 여기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