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시작된 연세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일단락됐다.
연세대 노동자들은 2017년 정년 퇴직자 31명이 일하던 자리를 모두 신규채용하라고 요구하며 지난해 연말부터 싸워왔다.
올해 초 연세대를 비롯한 서울시내 여러 대학이 2017년 정년퇴직자 일자리를 초단시간 아르바이트로 채우거나, 아예 신규채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력 감축을 시도했다.
최저임금 인상 등 임금 인상 요인이 커진 상황에서 인건비를 줄이려는 시도였다. 연세대학교의 경우 올해 임금 동결을 약속하면 인력 구조조정은 안 하겠다며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서울 주요 대학에서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고 학생들의 연대가 확산되는 조짐이 보이자 정부 주요 인사들이 대학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어떠한 실질적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이화여대·고려대·홍익대는 1월에 학교 측이 한 발 물러서 노동자들이 승리를 거뒀는데 노동자들의 투쟁과 학생들의 연대 외에도 학교 측에 불리한 정치적 사건들이 적잖이 영향을 끼친 듯하다. 예컨대 당시 정부는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 투쟁 지속은 노사정대표자회의 추진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했을 법하다. 게다가 이화여대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으로 총장이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다. 홍익대학교 측은 정원 감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일부 노동자들을 해고해 노동자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단결해 싸웠고, 방학중에 노동자 투쟁 지지라는 단일 안건으로 전학대회를 성사시키는 등 학생회들이 적극 연대 활동에 나선 것도 학교 측에 큰 압력이 됐을 듯하다.
반면 연세대 당국은 요지부동이었다. 정년퇴직자의 수가 다른 대학에 비해 훨씬 많다는 점도 작용했던 듯하다. 또 고려대학교와 달리 학교 측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책략을 벌인 결과, 일찌감치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투쟁에서 이탈했다. 안타깝게도 총학생회 선거 등이 무산되는 등 학생들의 활동이 전반적으로 약화되면서, 노동자 투쟁 연대가 확산되는 속도도 더딘 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등에서 후퇴할 조짐을 보이자 학교 측도 눈치를 볼 시간을 번 듯하다.
그럼에도 연세대학교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투쟁에 적극 나섰다.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학교 측의 단시간 노동자 투입 저지 투쟁을 시작으로 본관 점거와 철야 농성까지 학교 측의 외면에 맞서 투쟁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서경지부 조합원들은 학교 측의 정원 감축 시도가 노동조건에 끼칠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초단시간 아르바이트가 도입되는 경우, 당장 조합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진 않더라도 이후에 들어올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일자리를 물려주는 셈이었다. 신규채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일부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강화될 우려도 있었다.
정원을 줄이기 전에도, 청소 노동자들은 출근 시각인 오전 6시 이전에 나와 청소를 해야 했다. 정시에 출근하면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에 일을 다 마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인력은 부족했다는 얘기다.
연세대 총무처는 투쟁 와중에도 빌링슬리관 청소 인력 두 명 중 한 명을 다른 곳으로 전환배치했다. 하지만 이 건물에서 수업을 들어본 학생이라면 누구나 혼자서 이 건물 전체를 청소하라고 시키는 것이 정신 나간 짓이라고 여길 것이다.
응원단 학생들이 많이 쓰는 노천극장 화장실은 변기마다 오물로 막혀 악취가 풍긴지 오래다. 2016년 11월 언더우드 기념관에서 일어난 화재도 학교 측이 상근직 시설관리 노동자들을 임시직으로 바꾸면서 보일러실에서 일어난 화재를 진화할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그나마 우연히 일찍 출근한 경비 노동자의 신고가 있었기에 큰 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따라서 학교 측의 정원 감축을 허용할 경우 이런 상황이 더 악화될 게 불보듯 뻔했다. 올해에는 정년퇴직자가 훨씬 더 늘어나 올해 이를 막지 못하면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다.
연세대학교 재학생들과 졸업생들, 지역 단체들과 주민들도 이 투쟁에 지지를 보냈다. 적립금 5300억 원을 쌓아놓고 매년 수천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받는 연세대학교 당국이 ‘돈이 없다’며 일자리를 줄이려 한다는 소리에 많은 이들이 규탄 서명에 동참했다. 연세대학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백양로에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현수막 수십 개가 걸렸다.
아쉬움
학교 측도 개강을 앞두고 압력을 느꼈는지 일부 신규채용안을 제시하며 먼저 교섭을 요청해 오기도 했다.
단기 알바 투입으로 전환배치를 거부하며 힘겹게 싸워 온 일부 노동자들은 투쟁 장기화로 힘겨워 하면서도, “‘무노동 무임금’을 각오하고라도 파업을 조직해서 이 투쟁을 승리로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경지부 연세대분회는 최종 ‘10명 충원, 알바 투입 시도 중단’안에 합의했다. 먼저 알바 투입을 막아낸 것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 신규충원 인원수가 애초 목표에 크게 못 미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일찌감치 정원 감축에 합의해 줬기 때문이다. 또 일부 경비 업무의 경우 자동화·무인화 되거나 이미 전환배치됐다.
그럼에도 빈 일자리가 모두 충원된 것은 아니다. 서경지부와 연세대분회 집행부는 동력이 약화됐다고 여겼거나(사실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투쟁을 더 끌고 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석 달 가까이 싸워온 노동자들은 아쉬움도 토로하고 있다.
“합의안은 우리가 고생한 것에 비해 아주 미비한 합의안입니다. 이 정도 하려고 우리가 이 고생했나요? 퇴직자 일자리 안 채우는 것도 우리에겐 중요했는데요.”.
“지금까지 힘들게 버텨왔는데, 왜 이렇게 급하게 합의를 해야 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일부 조합원들은 초단시간 아르바이트 저지를 위해 임금 체불과 해고 위협, 학교 측의 무단 침입 협박까지 참아가며 전환배치를 거부하고 싸웠는데, 합의 직후 사측으로부터 전환배치 통보를 받았다.
“최종 합의 직전 조합원 총회에서는 우리와 관련된 얘기가 전혀 없었어요. 다들 잘된 줄 알고 박수치고 눈물 흘리며 끌어안았죠. 정말 인사발령 합의를 해야 했다면, 우리한테 사전에 양해라도 구했어야 합니다. ‘이러이러한 이유가 있어 기존 건물에서는 옮겨야겠다든지’ 말입니다.”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며 3개월 싸운 건 10년을 일한 건물에서 계속 일하기 위함이었어요. 노조에서는 우릴 지켜주겠다 약속했는데…”
이런 불만 때문에, 합의 이후 서경지부와 연세대분회 집행부는 지부 조합원들에게 인력 충원이 부족한 점과 당사자들에게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전환 배치를 수용한 점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또, 연세대 당국은 이번 합의 후 “앞으로 발생할 정년퇴직자에 대해서는 이번처럼 일부만 신규채용을 하는 식으로 노동인력을 조금씩 줄”여 “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들이 우려한 대로 학교 측은 앞으로 계속 정원 감축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또 연세대학교 노동자들이 그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다시 투쟁에 나설 것이다. 그때에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더 잘 싸워 승리를 쟁취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