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여야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동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개악’에 합의했다. 여야 합의로 상임위원회를 통과했으므로 28일 본회의 통과도 확실시된다.
발표된 주요 내용은 이렇다.
- 1주를 7일로 명시해 주간 노동시간의 상한선을 52시간으로 하되, 사업체 규모별로 단계 시행을 하고 30인 미만 사업장은 8시간 추가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다.
- 휴일연장근로 시 8시간 이내는 연장근무에 따른 수당을 중복할증으로 지급하지 않는다.
- 근로시간 제한 제외 특례 업종을 기존 26개에서 5개로 축소한다.
- 공휴일 유급 휴가를 확대한다.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를 대부분 회피하고 사실상 사용자들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노동시간은 조금 줄어드는데, 사용자들의 인건비 부담은 최대한 줄여 주는 방향이다.
사용자들의 숙원인 탄력근로시간제 확대 적용을 위한 논의를 명문화한 것도 독소 조항이다. 사용자들의 필요에 따라 근무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하겠다는 것이다.
행정해석 폐기는 사실상 유예됨
사실상 주당 68시간 상한제인 노동부의 근로기준법 행정해석은 ‘일은 더 시키되, 임금은 적게 주려는’ 사용자들을 위한 대표 노동 적폐였다.(아래 박스 기사 참조)문재인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고, 노동부 장관 김영주는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노동부의 행정해석이 잘못됐다며 사과까지 했다. 그러면 잘못된 지침을 폐기하기만 하면 되는데, 문재인 정부는 입법을 통해 해결하겠다며 시간을 끌어 왔다.
이번 합의는 그 이유를 보여 준다. 행정해석을 폐기하면 즉시 현장에서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단계별 시행으로 법을 개정해, 사실상 노동부 행정해석 적용 시기를 연장한 것이다.
그 결과, 전체 노동자의 약 38퍼센트(5인~49인 사업체의 750만여 명)는 문재인 정부 임기 마지막 해(2021년) 7월이 돼야 주 52시간 상한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조차도 부실해, 30인 미만 사업장은 특별연장근로 허용 때문에 다음 정부의 첫해(2022년 12월 31일)까지도 주 60시간 상한제가 적용된다. 전체 노동자의 30퍼센트 가까이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은 기약도 없다.
노동부 행정해석은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임금)을 덜 주려는 것이기도 했다. 중복할증 문제는 통상임금 범위 등 체불임금 소송에서도 쟁점이 돼 왔고, 수당을 중복할증으로 지급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는 판결도 잇따랐다. 그래서 노동계 일각에서는 올 상반기로 예상된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 보자는 말조차 있을 지경이었다.
그러므로 이번 개악은 만에 하나 대법원에서 중복할증 지급 인정 판결이 나올까 봐, 그 전에 법을 바꿔 노동 적폐에 면죄부를 주고 합법화해 주는 것이다. 사용자 연합단체 경총은 중복할증 금지를 환영했다. 오히려 (법 위반 고민 없이) 저렴하게 장시간 노동, 특히 휴일 노동을 강요할 수 있게 됐다.
‘중복할증이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욕구를 자극해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에 해롭다’고 보는 견해가 노동계 일각에 있는 것도 정부와 사용자들에게는 빈틈으로 보였을 법하다.
특례 업종 조항 폐지하라
주당 노동시간 제한에서 제외되는 특례업종이 줄어든 것이 그나마 개선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연간 2900시간을 일하는 우체국 집배원 노동자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졸음 운전 등으로 사회적 문제가 됐던 고속버스를 포함한) 노선버스 등이 특례 업종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특례업종 조항 자체가 악법이고, 양대 노총을 포함한 노동계는 악법 폐지를 요구해 왔다. 보건업 등 24시간 운영이 필요한 곳에서는 정규직 고용을 늘리면 노동시간 특례가 필요 없다.
최근의 안전사고들로 간호사들의 장시간 격무가 환자 안전에도 해롭다는 게 명백해졌는데도 보건업(병·의원, 보건소 등)은 통째로 특례 업종에 남겨 놓았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고통받아 왔던 민간 택배, 화물 운송, 직영·위탁 우체국 택배 서비스도 특례 업종에 남았다.
관공서의 공휴일 규정을 민간에도 적용하기로 한 조처는, 그조차 적용받지 못해 온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그러나 공공부문과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는 특별히 개선이랄 것이 없다.
항의 투쟁 조직해야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가한다고 했는데도, 관련 논의에서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일방으로 개악을 처리했다. 이번 개악이 사용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노동계의 반발을 고려해 사소한 개선은 포함시켰지만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 올림픽이 조성한 남북 화해 분위기와 사회적 대화 지지 정서를 이용해 근로기준법을 개악했다. 여야가 김영철 방남 문제로 극심한 대결 국면인데도,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근로기준법을 바꾸는 데서는 서로 손을 잡았다.
또한 그동안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회적 대화 참가에 비중을 두면서 이런 상황에 대비한 투쟁 태세를 갖추는 데 소홀했을 것이다. 포퓰리즘적으로 남북 화해 분위기에 고무돼 방심한 면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함께 처리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던 최저임금 개악도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 기한이 끝나는 3월 중순이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이번 개악이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 주는 방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저임금 개악이 시도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대화와 투쟁을 병행하겠다고 공약했고, 특히 최저임금 산입 범위 문제와 근로기준법 “관련 개악이 일방 강행될 경우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를 재논의”하겠다고 한 만큼, 좌고우면 하지 말고 항의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노동부 행정해석, 유예가 아니라 폐기됐어야
1주 노동시간을 최장 68시간까지 할 수 있도록 한 노동부의 행정해석 자체가 그동안 ‘노동 적폐’로 지적돼 왔다.
노동부 해석의 근거는 일주일이 7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정부는 1954년부터 이런 해석을 고수해 왔다. 주 6일 근무에서는 6일, 주 5일 근무에서는 5일로 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근무일이 아닌 나머지 휴일에 하는 노동은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연장근로 한도 12시간에 더해 휴일에도 하루에 8시간 일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 6일 44시간제에서는 최고 64시간(44+12+8)까지 합법적으로 일을 시킬 수가 있다고 해석했다. 주 5일 40시간제에서는 오히려 최장 한도가 68시간(40+12+16)으로 늘어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위해 노동부는 근로기준법이 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을 각각 정의한 점도 악용했다.
국가는 이런 식으로 장시간 노동을 제도화해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걸 도와 왔다. 또한 휴일 노동을 연장근로 산정에서 배제해 휴일 노동 시 연장근로수당과 휴일근로수당을 중복해 지급해야 할 의무를 회피해 왔다. 한마디로 말해, 마른 걸레까지 쥐어짜 착취율을 높이려 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나라가 됐다. 한국 노동자들은 OECD 평균에 견줘 1일 8시간 주 5일 노동을 기준으로 두 달가량을 더 일한다.(이마저도 한국 정부가 OECD에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을 172시간 축소 보고했다는 의혹이 있는 통계에 근거한 비교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이런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폐기하라고 한 것은 정당하다. 노동자들은 당장의 개선 요구로, 최소한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주 52시간 한도라도 우선 지키라고 해 왔다.
그런 항의 덕분에 노동부의 행정해석을 비판하고 휴일 근무시 수당을 중복할증해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도 잇따랐고,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라는 여론도 형성돼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행정해석 폐기를 사실상 3,4년 유예하고 법으로 중복할증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