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날씨임에도 또다시 박근혜 정권 퇴진 집회에 수십만 명이 모였다.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열린 “끝까지 간다! 박근혜 정권 즉각 퇴진·조기 탄핵·적폐청산 9차 범국민행동의 날”에는 60만 명(주최측 추산, 전국 70만 명)이 모였다. 부산에서도 7만 명이 모였다. 첫 집회를 3만여 명으로 시작한 이후, 8주째 서울 도심에 수십만 명이 연속으로 모인 것이다.
△청와대 방향 행진. ⓒ이미진
△헌법재판소 방향 행진. ⓒ이미진
△삼청동 방향 행진. ⓒ이미진
오늘 집회는 성탄절 전야를 맞아 시내 나들이를 나온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많았다. 데이트를 나온 커플들도 집회와 행진에서 눈에 많이 띄었다. 청소년들이 많이 나온 데다가, 곳곳에서 분노의 자유 발언들을 해 호응을 많이 받았다. 민주노총 노조와 좌파단체들, 대학생 단체들이 행진을 앞장서 이끌었다.
집회는 성탄절 전야의 특성상 축제처럼 진행됐고 사람들도 흥겹게 호응했지만, 분노는 여전했다. 박근혜는 탄핵소추안에 뻔뻔하기 그지 없는 답변서를 보냈고, 여전히 황교안이 박근혜 정부를 이끌고 있다. 재판과 국회 청문회에서 최순실과 우병우, 김기춘 등 정권 실세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죄를 잡아떼고 있다. 청문회를 보다가 “고구마를 1백 개 먹은 것 같았다”는 한 대학생의 발언이 사람들의 마음을 잘 표현한 듯하다.
사람들은 연이은 강력한 대중 시위로 박근혜 직무를 정지시키고, 새누리당을 쪼갠 것에서 힘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유례 없는 시위가 국민적 지지를 받고, 곤두박질 친 박근혜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는데도 박근혜 정권이 버티는 것, 야당이 탄핵소추 가결 후 운동과 거리를 두는 것에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권을 확실히 끝내길 바라는 마음이 전혀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구호 중 “황교안이 박근혜다”(황교안 사퇴 요구)가 집회와 행진 방송차에서 인기를 끈 것도 그런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본대회 후 청와대(청운동 길), 헌법재판소(안국동), 국무총리공관(삼청동 길) 세 방향으로 나눠진 행진에서 지난주에 견줘 헌재 방향 규모가 두드러지게 늘어난 것은 제도적 수단으로라도 서둘러 강제 퇴진을 시키고 싶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물론 여전히 청와대 방향이 가장 많았고, 삼청동 길도 가득 찼다.) 배포된 여러 팻말에서 “조기 탄핵” 문구를 담은 팻말도 인기가 높아진 듯 보였다.
크게 줄지 않은 참가 규모도 그렇고, 사람들은 우익들이 헌재를 타격 대상으로 삼아 “탄핵 무효”나 맞불 집회를 열려고 하는 것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들도 컸을 것이다. 여전히 경계를 풀 수 없는 상황이라고 느껴지니, 야당들이 조기 대선을 향한 애드벌룬을 띄우는 것도 광장과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썩 만족스럽지 않다.
가령, 최근 지지율이 대폭 오른 더불어민주당이 지역조직 깃발들을 들고 수백 명 참가했지만, 광장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사전 행사에서 한 중학교 1학년 학생도 “박근혜가 탄핵됐다고 당연히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진짜 국민들이 원하는 게 뭔지 고민하시라”고 말할 정도였다. 황교안 사퇴 요구에 반대한 정의당의 광장에서의 인기도 초기만큼은 아닌 듯 보였다. 그럼에도 정의당은 주류 야당보다는 더 환영받고 있고, 오늘도 “조기 탄핵”을 주장하며 당원들을 동원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한편, 오늘 주최측이 본무대에서 미리 행진 방향과 각 방송차를 안내하자 사람들이 광장에서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이동해 따라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자 바로 앞에 서 있던 한 가족은 ‘헌재로 가야 한다, 아니다 총리 공관으로 가야 한다’ 하며 즉석에서 가족 회의를 열었다. 운동 참가자들이 이처럼 정치적이다. 참가자들의 정치의식을 낮춰 보고, 정치와 조직의 깃발이 거부당한다는 식의 (도대체 집회에 와 봤는지 모를) 기사들이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 이유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은 운동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명확한 정치가 매우 중요함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사전 행사들
오후 1시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교수연구자 거리시국강연”이 열렸다. 노중기 교수는 지난 4년 동안 박근혜에 맞서 싸워 온 세력들이 있었고 11월 12일 첫 1백만 집회까지 이들이 규모를 키워 왔음을 강조했다.
이석기 석방 요구 서명 캠페인은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여러 곳에 부스를 차리고 서명을 받았는데, 호응을 많이 받았다. 광화문 9번 출구에 위치한 헌법재판관에게 엽서 보내기도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상명중학교 학생들이 세월호 트리를 만들어 와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다.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각종 풍자도 많았다. 특”껌”, 박근혜깜”빵”이 등장했고, 몇몇 예술인들은 “양파”를 까면서 세월호 거짓말이 이처럼 “까도 까도 나온다”고 비판했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박근혜가 밀어붙이는 국정교과서 중단 서명과 홍보물이 설치됐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도 서명을 호소했고, 많은 사람들이 조희연을 알아보고 사진을 함께 찍었다.
재벌을 규탄하는 집회도 계속됐다. 반올림은 유인물을 나눠 주며 사람들에게 삼성전자반도체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삼성을 폭로했다.
오후 3시 광화문광장 북단 본무대에서 적폐 청산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퇴진행동은 연내 해결과제로 세월호, 사드, 성과연봉제, 언론 장악, 백남기 농민 사망, 국정교과서 등 6개를 제시한 바 있다. 토크콘서트에서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 씨, 철도노조 김영훈 위원장 등이 각각의 과제를 대표해 발언했다.
△대학생들의 사전 집회. ⓒ이미진
△대학생 사전 행진 ⓒ이미진
대학생시국회의 청운동 앞 약식집회
대학생들은 오후 2시에 보신각 앞에서 모여 청와대 방향으로 먼저 행진했다. 이 집회에서는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없애자는 메시지가 강조됐다. 제1적폐는 박근혜 그 자신이고 박근혜 정부를 떠받쳐 온 황교안도 적폐라는 규탄이 이어졌다. 박근혜의 사악한 정책들도 다 날려버리자고 강조했다.
대통령 행세하는 황교안을 규탄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양효영 활동가의 발언이 호응이 컸다.
“국정조사 청문회 완전 고구마 1백 개 먹은 것 같았다.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모두 기억상실증 걸린 것마냥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우병우한테는 ‘너 우병우 아냐’고 물어 봐도 모른다고 잡아뗄 기세였다. 황교안은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황교안은 권한대행 하라니까 아예 박근혜에 빙의해서 박근혜의 독선과 오기까지 대행하고 있다. 이런 자가 국정을 운영하는 게 바로 박근혜 퇴진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70일 넘게 점거를 이어오는 서울대 학생도 발언했다. 서울대 사회대 강유진 학생회장은 “노동자들은 폭력적으로 탄압당하고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학생들은 스펙 경쟁을 강요당하고 있다”며 “서울대에서도 알 수 없는 국제화 강조하며 대학의 기업 연계 강화할 시흥캠퍼스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은 “힘내라 서울대 점거”, “승리하자 서울대 점거”라는 구호로 지지와 연대를 보냈다.
416대학생연대 장은하 씨는 “반성할 줄 모르는 국회를 견인한 건 바로 대학생과 국민들”이라며 “특검이 ‘7시간’ 밝힌다고 했지만 이것 또한 믿을 수 없다.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도 퇴진시키자”고 호소했다.
학생들은 1월 7일 세월호 1천 일 집회에도 적극 참여하자고 다짐하고 본대회 참가를 위해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왔다.
본대회
“박근혜가 퇴진해야!”
“메리 크리스마스!”
박근혜를 즉각 퇴진시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맞자는 의지를 확인하며 본 집회가 시작됐다. 사회를 맡은 퇴진행동 윤희숙 집회기획팀장은 박근혜 즉각 퇴진과 구속 외에도 황교안 사퇴와 구속 등도 구호로 강조했다.
퇴진행동을 대표해 이재화 변호사(민변 박근혜 퇴진 특위 부위원장)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 변호사는 박근혜 즉각 퇴진, 적폐 청산, 황교안과 그 부역 장관들 사퇴를 강조했다.
“국정 농단 주범 박근혜를 국민의 힘으로 즉각 퇴진시켜야 한다.
“박근혜의 적폐를 청산하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우선 인적 청산부터 해야 한다. 박근혜, 김기춘과 우병우를 구속시켜야 한다. 대통령 코스프레하면서 박근혜 표 나쁜 정책을 추진하려는 황교안과 그 부역 장관들을 모두 사퇴시켜야 한다.
“박근혜 표 나쁜 정책과 제도도 폐기시켜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 재제정, 백남기 농민 특검 실시, 사드 배치 중단, 성과퇴출제 중단,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 언론장악방지법 제정 등 6대 긴급 과제는 반드시 올해 안에 관철시켜야 한다.
그리고 헌재의 조기 탄핵을 촉구하며, 헌재를 믿지 말고 계속 촛불을 들자고 호소했다.
“지금 헌재는 박근혜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다. 심판 지연은 또 다른 부역이다. 조기 탄핵은 국민의 명령이다.
“헌재는 청와대와 내통해 진보정당을 해산한 전력이 있다. 촛불이 사그라지면 헌재는 언제든지 엉뚱한 판결을 할 수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 정의로운 세상이 오는 그날까지 광장의 촛불은 계속 타올라야 한다.”
소등 행사를 할 때 정부종합청사 건물에는 레이저로 쏜 “박근혜 구속, 조기 탄핵” 글씨가 눈에 띄었다.
집회가 끝날 즈음에, 사회자는 12월 31일은 박근혜 없는 2017년을 위해 ‘송박영신’ 집회로 하려 한다고 말하며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 줄 것을 호소했다.
△본대회 모습. ⓒ이미진
△본대회 모습. ⓒ이미진
△정부청사 건물 ⓒ이미진
부산 대회
부산에서는 7만 명(주최 측 추산)의 사람이 또 한번 모였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3천여 명 참가한, 민주노총 사전대회로 이날 집회가 시작됐다.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서울과 마찬가지로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많았다. “박근혜가 구속돼야 메리 크리스마스, 공범자도 구속돼야 메리크리스마스” 구호가 호응이 좋았다.
민주노총 사전 대회에서 부산지하철노조 이의용 위원장은 “지금 사측은 신규노선인 다대선을 개통하면서 6명 밖에 채용하지 않겠다고 한다. 구조조정 없이 1백90명 이상의 정규직이 고용돼야 한다. 불편하시더라도 파업을 많이 응원해 달라”고 발언했다.
본 대회에서 민주노총 김재하 부산본부장은 “우리보고 개, 돼지라고 했던 사람들이 지금 탈당한 사람들입니다 그게 무슨 진정한 보수입니까 황교안은 자신이 대통령이라도 되는 양 행세하는데 당장 내려와야 합니다. 촛불이 권력입니다. 헌재는 당장 탄핵을 결정해야 합니다” 하고 발언했다.
참가자들은 문현로터리까지 행진하고 집회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