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인 정치 난민들의 난민 인정 운동에 연대를!

이집트에서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다 망명한 민주주의 투사들이 한국에서 8년이 넘게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2011 이집트 혁명에 참여했고, 2013년 군부 쿠데타로 반혁명을 일으킨 엘 시시의 탄압을 피해 목숨을 걸고 한국을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8년간 한국 정부는 난민 신청을 한 이들에게 “고의적 지연, 비인도적 처우, 신분증 회수, 강제 출국 위협, 제출 증거 무시”로 일관했습니다.

쿠데타를 막아낸 운동의 성과로 집권한 이재명 정부는 국제 무대에서  K-민주주의의 힘을 자랑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법무부는 난민 인정을 거부했고, 사법부 또한 이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난민 신청자 지위로는 일을 할 수도,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서 치료를 받을 수도, 기본적 생활을 보장 받을 수 없기에 이들은 “거대한 감옥 같은 삶에 갇혀 있다”며 고통을 토로합니다.

재한 이집트인 정치 난민들의 난민 지위 인정 촉구 집회 (2025.10.14) ⓒ이미진

그러나 이들은 낙담하지 않고 연대를 호소하며 정의를 위한 투쟁에 나섰습니다. 10월 14일 대통령실 앞 집회를 시작으로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인천출입국·외국인청, 법무부, 국회의사당 앞에서 난민 인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난민들이 그저 불쌍한 사람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투쟁에 나설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들은 이들의 연대 호소에 응답해 지난 2주간 기자회견, 집회, 행진 등에 참가했습니다.

지난 10월 17일 유엔 난민기구 한국 대표부를 향해 난민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에 참여한 김태양 회원은 ‘빛의 혁명을 진정으로 계승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친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이집트인 난민들을 위한 정의를 촉구했습니다.

10월 17일 오후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앞 긴급 기자회견 ⓒ유병규

2025년 10월 17일, 유엔난민기구 한국 대표부 앞 긴급 기자회견 발언 전문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저는 제주도 출신입니다. 2018년에 예멘에서 내전을 피해 온 난민 500여명이 한꺼번에 제 고향 제주도로 입국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예멘에서 의사, 교사, 학생이었던 그들은 전쟁을 피해 목숨 걸고 도망쳐 온 이억만리 타지인 한국에서 손의 살갗이 반나절만에 벗겨질 정도로 익숙치 않은 고기잡이나 농사일을 도우며 생계를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가 이 난민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부는 난민들이 제주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출도제한’ 조치를 내려 마치 난민들이 범죄자 무리인 양 취급했습니다. 생계 지원이나 취업 지원도 전무했습니다. 마치 난민들이 제풀에 지쳐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떠날 때까지 버티겠다는 심산인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났습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난민 인정률은 고작 1.8퍼센트였습니다. 2024년까지 제도 시행 이후 누적 난민 인정률은 2.7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이런 지표들은 예멘 난민들이 입국하고 7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작년 겨울 윤석열의 계엄에 맞서 저를 포함한 수많은 학생과 노동자들이 국회 앞으로 달려가 군인들을 저지했고, 기어이 윤석열을 끌어내렸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를 ‘빛의 혁명’이라고 추켜세우고 있습니다. 물론 윤석열의 폭거에 맞서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마땅히 기념해야 할 일이 맞습니다.

빛의 혁명이 패배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알고 싶다면, 오늘의 이집트를 보면 됩니다. 한국에서 난민법이 처음 입법되던 즈음 이집트에서도 ‘빛의 혁명’이 있었습니다. 이집트 민중의 힘으로 수십년 동안 이어진 독재자 무바라크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고 심대한 사회 변혁의 기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군부의 반격으로 혁명에 참가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살해당하거나 투옥됐고, 많은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됐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저와 함께 서 계신 이집트 난민들도 그 혁명에 참가했다가 난민이 되신 분들입니다. 마치 한국의 난민법이 꼭 이들을 위해 제정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 난민들은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한 싸움을 결코 멈춘 적이 없습니다. 머나먼 한국 땅에서도 이집트의 독재와 팔레스타인의 학살에 반대하며 목소리를 높여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빛의 혁명을 계승한다는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는 이 난민들을 여전히 매몰차게 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법무부와 사법부는 난민들이 제출한 수많은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이를 보고 있자니 세계 난민 문제 해결에 꾸준히 기여하고 있다는 한국 정부의 자랑과 치적이 위선의 극치로 느껴집니다.

빛의 혁명을 진정으로 계승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친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한국인이든, 이집트인이든, 국적이 어디가 됐든 말입니다. 어제부터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도 한국을 방한해 여러 정부 인사들을 만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유엔난민기구가 그 구실을 다하려면 최고대표가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정부 인사들과 악수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곳으로 달려와서 이 난민들의 손을 맞잡고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해야 마땅합니다.

한국의 대학생으로서 저 역시 모든 난민들을 위한 정의가 바로 세워질 때까지,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월 24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집트 난민 인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조승진

이재혁 회원은 국회 앞 난민 인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해 국회를 향해 일갈했습니다.

“민주화 운동 경력이 있는 국회의원들은 들으십시오. 지금 여기 있는 이집트인 정치 난민들은 당신들의 젊은 시절처럼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한 사람들입니다. 군부 독재의 탄압을 피해 망명해 온 민주화운동가들이 민주화됐다는 한국에서 이토록 혹독한 처지로 내몰려 있는 게 과연 정의로운 일입니까?”

또한 쿠데타를 막아낸 운동 덕분에 당선한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이집트의 전두환’ 독재자 압델 파타 엘시시와 전화 통화를 하며 교류 협력을 약속한 일을 비판했습니다.

2025년 10월 24일, 국회 앞 기자회견 발언 전문

안녕하세요. 서울 도봉구에 사는 청년 이재혁이라고 합니다. 이집트인 정치 난민들의 난민 인정 운동에 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자마자 저는 택시를 타고 이곳 국회의사당 앞으로 왔습니다. 그날 밤 국회 앞에 모인 수천 명의 시민들, 소총과 실탄을 갖고 있던 계엄군, 계엄군 헬기들이 국회로 날아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집트인 정치 난민분들도 본국에서 쿠데타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군부 독재의 탄압을 받고 한국으로 망명 온 분들입니다.

며칠 전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화운동기념관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뀌었지만, 과거에는 민주화운동 투사들을 구금하고 고문하던 남영동 대공분실이었습니다.

제 옆에 계신 이집트인 정치 난민들은 남영동 대공분실 같은 곳에 끌려갔었거나 끌려갈 뻔했던 민주주의 투사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집트에서는 수만 명의 민주주의 투사들이 구금돼 있고 고문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들으십시오. 한국의 민주주의가 중요한 것처럼 이집트의 민주주의도 중요합니다. 이집트의 민주화운동가들을 독재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보호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는 국회의원들은 들으십시오. 지금 여기 있는 이집트인 정치 난민들은 당신들의 젊은 시절처럼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한 사람들입니다. 군부 독재의 탄압을 피해 망명해 온 민주화운동가들이 민주화됐다는 한국에서 이토록 혹독한 처지로 내몰려 있는 게 과연 정의로운 일입니까?

며칠 전 정말 화나는 뉴스를 봤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집트의 독재자, 이집트의 전두환 압델 파타 엘시시와 전화통화를 하며 교류협력을 약속했다는 뉴스였습니다. 정말이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윤석열 탄핵 운동 덕분에 당선한 이재명 대통령이 어떻게 다른 나라 독재자와 환담을 나누고 협력을 약속한단 말입니까? 이재명 정부가 진정 민주주의의 편이라면 독재에 맞서 싸운 이집트인 정치 난민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난민들은 우리의 이웃입니다. 저는 모든 난민들이 난민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난민들에게 국경을 열어젖혀야 합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 라파엘 하르파즈 같은 자는 한국에 살면서 여러 특혜와 보호를 받으며 이스라엘이 벌이는 인종학살을 정당화하는 활동을 합니다. 전국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은 전쟁 연습을 하며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위험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왜 난민들은 자녀들이 아파도 병원도 제대로 못 가고 위험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기본적 삶조차 보장받지 못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재명 정부와 국회에 요구합니다. 이집트인 정치 난민들을 즉각 난민으로 인정하십시오.

한국의 청년학생, 노동자, 시민들에게 호소드립니다. 이 분들은 윤석열의 쿠데타에 맞서기 위해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갔던 사람들, 그 이후 윤석열 탄핵 광장에 나섰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입니다. 이집트인 정치 난민들과 연대해주십시오.

10월 26일에는 서울 출입국 외국인청 세종로센터 앞에 난민들과 한국인, 다양한 이주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도심을 행진했다. (취재기: 이집트인 난민들이 서울 도심을 행진하다—한국인과 다양한 이주 배경 사람들 동참)

2022년부터 이집트인 난민 연대 활동을 해 온 강혜령 회원은 이날 집회에서 “비참한 체제와 위태로운 삶 속에서도 대의에 함께하고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 재한 이집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며 이들의 투쟁이 한국의 여러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2025년 10월 26일, 재한 이집트인 정치 난민들의 난민 지위 인정 촉구 집회와 행진 연대 발언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의 대학생 강혜령입니다. 저는 지난 3년 동안 재한 이집트 난민들과 난민 인정 투쟁에 연대해왔고 오늘도 함께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최근 한국의 법무부에 이어 사법부가 또 다시 난민 불인정을 판결한 것은 한국이 민주적인 국가라고 떠들지만 그것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보여주는 일입니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을 어떻게 이렇게 처참하게 대우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이없게도 한국정부는 난민들이 박해를 받은 증거가 없어서 난민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집트 정치난민들은 가족과 친구가 국가폭력에 의해 죽어가는 걸 목격했고, 재판에 넘겨져 최대 20년 형을 받는 끔찍한 탄압을 받기도 합니다. 난민들의 삶과 존재 자체가 증거인데, 도대체 어떤 증거가 더 필요합니까?

한국정부가 기약없이 질질 끌어 온 난민심사로 인해 여권이 만료돼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난민 자격을 얻기 위해 받는 난민심사가 오히려 족쇄가 되고, 기약없는 기다림은 난민들에게 육체적, 심리적인 고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겨울과 봄,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마음을 가진 수많은 한국인들이 재한 이집트인들의 난민 인정을 지지했습니다. 난민 인정 탄원서에는 6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을 했습니다.

윤석열의 쿠데타를 저지하고 그 일당을 끌어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추운 광장을 메운 수많은 사람들은 군부쿠데타에 맞서 싸운 민주투사들이 한국에서 난민 지위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연대의 응원을 보냈습니다.

윤석열이 내려가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난민들의 처지는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냉담하게 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 쿠데타를 저지한 평범한 사람들의 저항과 염원으로 집권하게 된 ‘민주적’ 정부가 맞는 것입니까? 

이재명 정부는 정치적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을 다시 죽음과 불안의 고통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손잡고 있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에서 열릴 APEC (아펙)을 계기로 수요일 한국에 오는 트럼프를 만납니다.

트럼프는 ICE(아이스)를 대동해 야만적 이주민 사냥을 벌이고, 가자지구의 끔찍한 인종학살 공범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를 비롯한 온갖 제국주의자들을 만나 협력과 교류를 강화하자고 할 것입니다.

또한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은 이집트 독재자 엘시시와 전화를 해 교류 협력 강화를 약속했습니다. 그 독재자 엘시시와 맞서 싸우다 한국에 망명 온 정치난민들은 내팽겨쳐놓고 말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이런 행보는 광장으로 나왔던 저같은 평범 청년 학생들, 민주주의 염원 세력에 대한 배신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정말 민주적이라면 이런 제국주의자들과 협력하고 그 고통을 우리에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이재명 정부는 난민들의 처지를 외면말고 즉각 난민지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지배자들의 국경통제에 맞서는 저항은 야만적인 체제가 양산하는 모든 오물들을 뿌리 뽑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난민들을 환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2022년에 참가했던 한 난민인정 집회에서 이집트인 정치난민 분은 “어디서든 자유와 민주적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재한 이집트인들은 전세계의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희망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한국에서 2년 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비참한 체제와 위태로운 삶 속에서도 대의에 함께하고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 재한 이집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 동지들의 난민 인정 투쟁이 한국에서 여러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함께 정의를 실현하는 그날까지 동지들의 손을 놓지 않겠습니다. 난민인정 투쟁이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전쟁, 빈곤과 기후 위기, 독재와 탄압 등 자본주의가 낳는 다양한 위기로 인해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정부와 지배자들은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온갖 거짓말을 동원해 생활 수준 악화에 대한 분노를 정부와 사장이 아니라 이주민, 난민에게 돌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난민과 이주민은 노동계급의 적이 아닙니다.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을 악화시키는 진정한 적에 맞서 이주민, 난민과 단결해 싸워야 합니다.

노동자연대 학생그룹은 정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는 이집트인 난민들과 연대하는 활동을 이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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