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법원의 판결이 1월 23일 확정됐다. 피고인 일본 정부가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일본 정부는 재판의 성립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이 국제법(주권면제) 위반이라면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준수하라고 주장했다. 적반하장이다. 또한 법적 절차에 따라 피고가 법원의 배상 명령에 불복하면 법원이 피고의 자산(이번 판결의 경우, 국내에 있는 일본 정부의 자산)을 압류하고 강제로 현금화해 배상을 집행할 수 있는데, 일본 정부는 이것도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일본 정부는 법원이 2년 전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따라 배상을 집행하려는 시도에도 수출 규제 등으로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나 식민지를 침략하고 그곳의 여성들을 위안부로 끌고 가는 만행이야말로 국제법을 위반한 전쟁범죄이다. 이미 25년 전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가 일본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법적 배상은 일본 국가가 제국주의 전쟁 범죄의 주체였음을 인정하고 그로 인한 피해에 공식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을 뜻한다. 일본 국가는 몰염치한 행태를 중단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 쟁점을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는 것이 한국에 더 유리할 수 있다면서 국제법을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런 국제기구들은 제국주의 질서 앞에서 완전히 무력하다. 가령 국제사법재판소는 미국 군대가 다른 나라 영토에서 저지른 불법 행위에 대해 종종 합법적인 면제권을 부여했다. 유엔에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비토권을 이용해 자국에 불리한 결정을 무력화시켜 왔다.
일본 정부는 제국주의 야욕을 키우면서 과거의 전쟁 범죄를 은폐하려고 한다. 일본을 핵심 동맹으로 삼는 미국이 이런 시도를 비호해 왔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 해결은 일본・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이들이 주무르는 국제 질서 자체를 반대하고 싸우는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위선과 배신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외교적 해법” 운운하면서 한・일 관계를 우선한다. 이번 판결 확정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 강제 집행을 가로막지 않겠지만 일본에 대해서도 “어떤 추가적 청구도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일본 정부가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지지 없이 법원이 일본 정부 자산을 찾아 압류하고 배상금으로 전환하기는 불가능한 만큼, 정부 입장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편에 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번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김강원 변호사는 “인권을 표방하던 정부와 대통령이 맞는가”라며 “피해자 할머니들 가슴에는 피멍이 들고 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이보다 앞서 문재인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용 문제처럼 배상을 강제 집행하는 것은 한・일 관계에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 간의 공식적인 합의였다고 인정했다. 국제법상 정식 조약도 파기되기 일쑤인 마당에, 하물며 양국 외교장관의 회담 결과를 구두로 발표한 것에 불과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왜 파기할 수 없는가.
고령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끈질기게 항의하고 싸우는 동안, 문재인 정부는 단 한 번도 한국 국가로서의 책임을 다 한 적이 없다. 문재인은 대선에서 합의 폐기를 공약해 놓고는, 집권하자 말을 바꿔 합의 파기는커녕 재협상조차 요구하지 않겠다면서 위안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 줬다. 심지어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위헌 판결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제기하자 외교부가 이 헌법소원을 각하해 달라는 정부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하기도 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불러 위하는 척하면서 뒤통수를 쳐 온 것이다.
올해는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분노스럽게도 지난 30년 동안,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역대 한국 정부들은 한・미・일 동맹을 과거사 해결보다 중시했고, 결국 위안부 문제 해결은 매번 뒷전으로 밀려났다.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와, 여기에 타협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염원을 배신하는 문재인 정부에 맞선 투쟁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배상하라!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정부 자산 압류하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하라!
2021년 1월 29일
노동자연대 학생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