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누적 확진자 수가 20만 명을 넘어섰다(3월 24일 현재). 독일의 확진자 수는 3만 명으로 세계에서 다섯번 째로 많다.
국내 일각에서는 독일 의료 체계를 모범인 양 치켜세운다. 그러나 독일도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비용 절감을 앞세운 긴축 정책을 편 결과로, 인력 부족과 필요 의료 장비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의 좌파 잡지 《마르크스21》이 독일 튀링겐주에 있는 예나대학 병원 간호사인 한 노동조합 활동가를 익명으로 인터뷰해 현지 위기 상황을 생생히 알렸다. 이 간호사는 병원들이 감염병 위기를 대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자연대 학생 회원 김아라가 《마르크스21》의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폭풍전야입니다.” 독일 예나대학 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지난 금요일(3월 13일) 자신이 일하던 시간에 병원에 접수된 코로나19 감염자는 없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병원 사람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이 문제가 심각하게 다뤄지거나 이 사태에 대한 준비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몇몇 코로나 의심 사례가 병원에서 발견됐을 때조차 코로나19가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어요. 이 병원은 교통사고로 벌어질 응급 상황 대처법은 있지만 전염병이 낳을 위기에 어찌 대처해야 할지는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병원 노동자들은 병실과 물품, 인력이 부족해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어요. 환자가 언제 밀려 들어올지는 예정돼 있지 않지만 때가 언제가 되든 혼돈 그 자체일 거예요.”
예나대학 병원에는 집중치료실이 네 곳 있다. 이 간호사가 일하는 집중치료실에는 침대 12개와 응급실이 갖춰져 있는데 현재 공간이 부족해서 응급실을 추가 병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미 모든 병상은 환자들로 차 있었다. 갑자기 코로나19 의심환자가 급증하면 분명히 응급환자 수용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추가로 발생할 환자를 돌볼 충분한 인력도 병상도 없기 때문이다. “제가 일하는 병동에는 장기간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에 집중 치료가 필요한 코로나19 환자가 오더라도 수용할 수 없을 거예요.” 그는 지금 가능한 빨리 침상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인력 부족
인력 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환자를 치료할 장비가 충분히 갖춰졌어도 기계를 작동하고 집중 치료 환자를 돌볼 인력이 부족하다.
게다가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병원 노동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경험이 아직 없는데다가 지난해 독감이 유행했을 때 보호마스크 부족 사태를 겪은 바 있다. 만일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노동자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이것이 노동자들을 두렵게 만든다.
이미 그의 일터에서 보호마스크와 소독제가 많이 부족하다. 당장은 괜찮지만 며칠이나 몇 주 안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마스크는 매번 하나씩 사용하고 바로 버려야 하는데, 마스크가 부족해서 여러 번 재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감염률은 높아질 것이다.
그는 노조 동료들과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 어떤 구체적 요구를 할지를 오랫동안 논의해 왔고, 실행에 나섰다. 이 노동자들은 정치인들과 병원 경영진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담은 공개 서한을 보냈고, 병원 곳곳에서 청원 운동을 진행 중이다.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는 데 기층의 사정을 잘 아는 노동자들이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조합원 대표 중 두 명이 병원 위기관리 팀에 참여하게 됐다. 노동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코로나19 사태 동안 위험수당과 초과수당을 지급하라고 요구한다.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도 감염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금전적 보상과 추가 수당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걱정도 되고 화도 납니다.” 이 간호사는 다음 근무일을 앞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정부가 그간 벌여 온 비용 절감과 긴축의 효과를 노동자·서민들이 직면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것뿐 아니라, 이 바이러스가 불완전한 의료 시스템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 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있는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독일도 병든 의료 체계를 갖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병원 간 경쟁과 이윤 추구가 심해졌다. 그 결과 인력이 엄청 감축됐다. 인력 감축으로 노동강도가 강화되자 간호사를 하려는 사람들도 크게 줄었다. 지금의 위기는 지배자들이 뿌린 대로 거둔 셈이다.
병원 노동자들은 이미 예전부터 이런 사태를 경고했었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이런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응급 상황에 대한 효과적인 조처도 내놓지 않았다.
위기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야 하지만 코로나19 위기의 원인은 잘못된 의료 체계에 있다. 지금의 위기가 보여 준 것은 이 체계가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다른 의료 시스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