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성공회대 행복 기숙사 정문에서 학생 150여 명이 참가한 집회가 열렸다. 전교생이 2000명인 성공회대에서 150명이 집회에 참가한 것은 큰 규모이다. 그것도 약 1주일 만에 조직된 집회였다. 그만큼 학생들의 불만이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불만의 핵심은 자기 전공(학과)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집회는 성공회대 총학생회, ‘분노한 학생들: 교육권 문제 해결을 위한 성공회대 공동대응 네트워크’, ‘성공회대 복사실&문구점 지킴이’가 주최했다. 학생회·동아리·소모임 25곳이 연대 단체로 이름을 올렸다.
이 날은 성공회대 당국이 “기숙사 건축을 위해 수고하여 주신 외빈들[전 성공회대 총장이자 현재 경기도 교육감 이재정 포함]”을 불러서 ‘행복 기숙사 개관식’을 개최하는 날이었다. 학생들은 이 행사를 겨냥해, 집회 제목을 ‘더불어 숲은 없다 학생 개관식’이라고 붙였다. “더불어 숲”은 고 신영복 교수가 쓴 유명한 말로, 성공회대의 표어처럼 돼 있는 말이다. 학생들은 학교 당국의 행태가 이 표어와 완전히 어긋남을 지적하려 했다. 그리고 외빈들 앞에서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는 성공회대의 실상을 알리고자 했다.
전공 선택 기회 준다면서 비인기 전공 폐지라니!
집회가 열린 계기는 4월 22일 성공회대 당국이 글로컬IT 전공의 폐지를 발표한 것이다. 그것도 학부제 학생 대상 전공 신청 설명회 자리에서 글로컬IT 전공의 폐지 결정이 통보됐다.
성공회대는 2016년 학부제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학교 당국은 이를 “교육 개혁”이라 칭하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전공 탐색·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학생들의 요구와 항의로, 다른 대학의 학부제와 달리 “인원 제한이나 성적에 의한 평가 없이 원하는 대로 전공을 선택”할 수는 있게 됐다.
그러나 학생들의 현실은 다양한 전공 선택의 기회를 진정으로 보장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부제 시행 후 개설 강의 수가 그 전보다 줄었다. 2014년 이후 4년간 개설된 강의 수는 평균 900개였는데, 지금은 50개가 줄어 850개 정도이다.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늘기는커녕 ‘비인기 강의’라는 이유로 강의가 사라졌다.
이 때문에 성공회대 학생들은 ‘수강신청 대란’을 겪어 왔다.
그리고 학생들은 자기 전공(학과)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껴 왔다. 신청자가 적은 전공은 담당 교수가 줄어드는 등의 일이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글로컬IT 전공의 폐지가 결정된 것이다.
게다가 학교 당국은 앞으로 ‘비인기’ 전공의 폐지를 계속할 의도임을 숨기지 않는다. 학교 당국은 수요가 낮거나 없는 전공에 대해 학교의 투자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기준은 “트렌드, 전체적인 수요,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사항, 학문의 방향”이다. 학생들의 필요와 요구가 아니라 기업의 입맛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교 당국의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6개의 전공(기독교문화, 영어학, 일어일본학, 중어중국학, 정치학, 정보통신학)이 폐지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학교 당국이 보이는 모습은 성공회대가 진보적 대학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큰 괴리가 있다. 학생들의 조건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결정을 일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날 집회에서 성공회대 부총학생회장은 학교 당국을 이렇게 규탄했다. “시험기간 중 제대로 된 홍보도 없이 진행된 설명회에서 다수의 학생들은 [글로컬IT 폐지] 통보조차 받을 수 없었다. … 글로컬IT 폐지 통보를 비롯한 학교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과 행보를 규탄한다.”
성공회대 당국은 그 동안 절대평가 폐지, 재수강 제한 기준 강화, 강의 수 감소, 대형 강의 증가 등을 추진하며 학생들을 경쟁으로 내몰았다. 이 날 집회는 그동안 학교 당국이 추진한 구조조정 등으로 누적된 학생들의 불만이 표출된 자리였다.
학생들은 “일방적인 전공 폐지, 학습권 침해 말라”, “시간강사 해고 말라, 노동권을 보장하라”, “대학이 시장이냐, 전공 폐지 규탄한다”는 구호를 소리 높여 외쳤다.
학교는 영리 추구 기업이 아니다
한편, 이 날 집회에서는 학내 복사실과 문구점 운영자 교체 결정에 항의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동안 학내 복사실과 문구점 운영자들은 학생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 왔다. 그리고 진보적 내용의 포스터나 출력물에 대해서는 요금을 깎아 주거나 받지 않는 방식으로 진보적 활동가들을 돕기도 했다.
이런 운영자들을 학교 당국은 임대료를 더 많이 주겠다는 업체로 바꾸겠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학생들은 ‘성공회대 복사실&문구점 지킴이’를 구성해, 반대 활동을 펼쳐 왔다. 4월 29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주차장 사태, 청소 노동자 사태와 전공 폐지 등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학내 문제들과 복사실 문구점 사태는 다른 결이 아니다. 이 문제들은 학교가 이윤만 쫓고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무시하며 불통하는 오만한 태도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4월 30일 집회에 참가한 ‘복사실&문구점 지킴이’ 백꽃잎 학생은 “결국 돈을 더 많이 내지 못하면 나가라는 소리”라며 “성공회대는 저에게 섬김, 열림, 나눔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공회대는 저에게 그래도 된다고 하는 곳이었습니다”고 발언하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복사실도 문구점도 성공회대 이웃이다” 하고 외쳤다.
성공회대 당국은 학생들이 선을 넘으면 대화가 힘들다며 이 날 집회를 취소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꿋꿋이 집회를 진행했다. 개관식 이후 외빈들과 총장은 새로 지은 기숙사를 함께 관람하고 식사를 하러 갔지만, 학생들은 구호를 외치며 끝까지 집회를 이어 갔다.
성공회대 학생들의 불만은 매우 정당하다. 그리고 성공회대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생총회 등의 행동을 이어 가자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성공회대 당국은 학과 구조조정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