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억 증발 소식이 전해진 지 18일 만인 3월 16일, 지난 주에 이어 2번째 총장의 설명회가 열렸다. 오후 4시라 수업 시간이 채 끝나지 않은 때였지만, 약 1백여 명이 사태에 분노해 자리를 찾았다. 지난 주 설명회에서 비판 받은 후, 기만적이었던 총장의 태도가 달라졌기를 기대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나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난 설명회에 비해 약간의 형식적인 설명만 추가됐을 뿐, 총장과 학교 측의 불성실한 답변을 비롯한 기만적인 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쌓일 대로 쌓인 학생들의 불만과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총장의 잦은 실언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총장은 간단한 인사말만 하고는 자리에 앉아버렸고, 사무처장이 총대라도 멘 듯 발제와 질의응답을 모두 도맡았다.
사무처장의 짧은 발제가 끝난 뒤, 1시간 넘게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한진해운 투자 경위에 더해, 돈을 날려놓고도 또 얼마 전 재단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에 동참한 것에 대한 진상도 요구했다.
학교 측은 한진해운 투자 건 만으로 질문 범위를 제한하자고 했다. 그러나 프라임 사업이나 송도캠퍼스 위약금 사태 등 총장의 지난 학사 운영과 교육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의문과 비판이 이어졌고, 핵심적으로 이번 손실 사태에 대한 총장과 학교와 재단에 책임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정당한 성토가 줄을 이었다.
이는 학교 측이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총장이 자랑해 온 ‘민주적인 소통’이 허황된 것이었음을 반증하는 동시에, 학교와 재단에 대해 불만이 깊고 광범하다는 것도 드러냈다.
총장에게 직접 답변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나오자 위기감을 느꼈는지 기획처장은 총알받이처럼 등장해 인하대의 등록금이 타 대학에 비해 얼마나 싼지, 그로 인해 학교 운영이 얼마나 힘든지, 학생들이 문제 제기하고 언론에 알려지는 것이 자신들을 얼마나 난처하게 하는지를 열심히 강변했다. 정말이지 시간 쪼개 가며 아르바이트 하고 수백, 수천만 원의 빚을 안은 채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참담하고 개탄스러운 심정에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해서는 안 될 말들이었다.
이어서 총장은 애초에 계획에 없던 직접 답변에 나섰다. 하지만 그마저도 불성실하고 무책임했음은 두 말할 필요 없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형식적 사과와 “다 잘 될 것”, “이렇게 내부에서 떠들면 돈이 안 온다”와 같이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듯한 말만 했을 뿐이다. 어디서도 책임지는 태도와 손실 충당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학교의 위기 속에서 구성원들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며 책임 전가를 함의하는 말을 넌지시 던지기까지 했다. 실제로 지난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학생 대표들은 8~10억을 추가 지원해 장학금을 확충해 달라고 했지만, 학교 측은 돈이 없다는 핑계로 거부했다고 한다.
도대체 학생들의 입장에서 그저 웃어 넘길 수 있는 상황인가? 박근혜가 ‘국가 경제가 어려우니 함께 힘을 모으자’면서 재벌로부터 뇌물을 받아 임금과 복지는 줄이고 세금은 늘려 그들에게 이윤을 선물하는 모습이 겹쳐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설명회와 마찬가지로 답변을 마치고는 다음 일정이 있다며 도망가듯 강당을 떠나는 총장에게 학생들은 질문과 항의를 계속했다. 이후 ‘총장 설명회’는 총장 없이 20분 정도 더 이어졌다. 학생들은 허망함과 배신감을 안고 자리를 떠야 했다.
아직 밝혀져야 할 진실들이 많이 남아 있다. 정말로 재단의 개입이 없었는지, 왜 기금운용위원회는 학기 당 1회 개회 규정을 어긴 채 1년 전 자료를 바탕으로 급하게 한진해운에 투자를 강행했는지, 왜 총장은 이 투자를 그냥 승인했는지 등. 교수회, 교직원 노동조합, 중앙운영위원회가 함께 참여하고 있는 진상규명위원회 등에서 낱낱이 진실이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총장 및 학교 임원들과 재단에 책임이 있음은 백번 분명하다. 학교 측이 학생 복지와 교육 개선에 쓰여야 마땅한 돈을 위기에 빠졌던 재단 계열사에 투기해 날려먹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그 재단은 수조 원대의 재산을 가졌으며, 민중이 끌어내린 박근혜 정권에게 잘 보이려 뇌물을 바쳤던 부패한 재벌이다. 게다가 본교 사무처장 낙하산 인사, 생협 불법 감사 등 학사 운영 전반에 개입해 악행을 저질러 온 악질 재단이다. 학교 운영 비용 중 3%밖에 부담하지 않는 재단이 50~60%를 짊어지는 학생들(2015년 기준)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학교 측은 지난 주 토요일 설명회에서 적립금을 기업에 투자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오자, 법적 근거를 들며 기업에 투자한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목도하듯이, 합법성과 도덕성은 일치하지 않는다. 학교발전기금은 기업에 투자해 이윤을 뽑아내기 위한 돈이 아니다. 학교 측의 말대로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이 턱없이 부족해 학교 운영이 어렵다면, 등록금을 올리고 장학금과 교직원 임금을 깎을 것이 아니라 재단에게서 자금을 끌어오면 된다. 그럴 여력이 있는 부패한 재벌인 재단이 돈을 지원하는 것이 손실 130억 원을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도 가장 정당한 방법이다.
사태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면,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을 비롯한 구성원들에게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총장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마땅하다. 그것이 바로 “개돼지”로 취급 받은 우리가 추악한 범죄자인 박근혜를 끌어내리며 실현한 최소한의 민주주의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총장은 시늉뿐인 소통과 독단적인 학사 운영으로 일관했고 이에 분노해 사퇴한 학교 임원들은 한둘이 아니다. 교수들과 교직원들 역시 등을 돌린 지 오래다. 게다가 총장은 2012년 정부 산하 기관장 시절 친인척 채용과 공금 유용으로 감사를 받았지만,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의 측근인 점 덕분에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따라서 총장의 도덕성에 큰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총장은 재단에 책임을 물을 것이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고 강당을 나가 버렸다. 그렇다고 20일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학생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사태 해결에 진심도 없고, 의지도 없는 최순자 총장은 퇴진하라. 재단과 학교 당국은 손실 130억 원을 책임지고 배상하라.
2017. 3. 17
노동자연대 인하대모임
문의 : 010-3738-7439 (수교 15 석중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