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언론들은 트럼프의 ‘예루살렘 발언’의 배후로 그의 유대인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주목한다. 트럼프가 쿠슈너 등 미국 내 친이스라엘 세력의 압박 때문에 미국의 진정한 이익에 어긋나는 일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전폭 지지하는 것이 미국 내 유대인들의 로비 때문이라는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는 유대인 음모 조직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좌지우지한다는 음모론과 연관 있다.
열렬한 시온주의자들이 역대 미국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차지하곤 했고, 미국의 대(對)이스라엘 원조 규모가 언뜻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만큼 막대한 것은 사실이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미국 지배계급이 친이스라엘 세력을 용인·후원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귀신 홀리는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국, 이후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은 시온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유대인들과 손잡고 중동 한복판에 이스라엘을 심어 넣었다. 이스라엘은 이런 제국주의의 지원으로 키운 힘을 휘두르며 불안정성이 큰 중동에서 오늘날 미국 제국주의의 사냥개 노릇을 한다. 가끔 주인이 당기는 목줄에 저항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연간 수조 원에 달하는 미국의 원조금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미국이 중동 지역에 매장된 석유를 통제하면서 누리는 이익(단지 금전적 이익뿐 아니라 지정학적 이익까지 포함)을 위한 선택이지 로비로 강요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미국을 움직인다고 보는 사람들은 상황을 완전히 거꾸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국주의가 아닌 소수 종교·인종 집단의 음모로만 현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체제가 낳은 범죄들의 원인을 엉뚱한 데로 돌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