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이즈의 날
에이즈 감염인과 성소수자들이 혐오 세력에 맞서 기습 시위를 벌이다
성지현
12월 1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에이즈·동성애 혐오 행사 ‘디셈버퍼스트’에서 에이즈 감염인과 성소수자 활동가 15여 명이 참가해 기습 시위를 벌였다.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로 1988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에이즈 예방과 편견 해소를 위해 제정한 날이다.
그러나 이날 열린 ‘디셈버퍼스트’는 에이즈 예방은커녕 오히려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는 행사였다. 이 행사는 기독교 우파와 보수 학부모단체가 주도해 “청소년 에이즈 예방 캠페인”을 표방하며 지난해에 시작했다.
올해 행사는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실과 한국가족보건협회가 주관했다. 성일종은 지난 10월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에이즈 확산이 동성애 탓’이라며 공공연하게 혐오 발언을 일삼은 자다. 한국가족보건협회 역시 “보건’을 명분으로 내세워 조직적 동성애 혐오 운동을 벌여 왔다.
이날 행사에도 동성애 혐오 우파인 자유한국당 의원 윤종필과 국민의당 국회의원 조배숙, 이동섭이 참가했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동성애를 반대하고, 혐오 세력에게 국회 토론회 등을 열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자들이다. 동성애 혐오 이데올로그인 <국민일보> 기자 백상현, 20대 총선에서 기독자유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김지연 등도 참가했다. 참가자 2백여 명은 교회를 중심으로 조직해 모인 듯했고, 교복을 입은 청소년 약 1백 명이 동원됐다.
개회사에서 법무법인 INS 대표 조영길은 자신을 “한국 최초 동성혼을 방어한[막은] 변호사”라고 소개했다. 이 자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혼인을 불승인한 서대문구청의 대리인이었다. 그는 “에이즈의 감염 원인“이 ”동성애“라며 동성애 혐오와 에이즈 공포를 부추겼다. 심지어 이런 ”에이즈 진실“을 알리지 못하는 ”’동성애 독재’ 시대에 살고 있다“고도 했다.
보수 교인 중심인 청중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그 안에 있던 에이즈 감염인 당사자와 성소수자들은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개회사가 끝나고 성소수자 활동가가 손을 들고 에이즈 감염인 당사자의 발언을 요청했다. 동시에 에이즈 감염인 당사자와 십수 명의 성소수자들이 청중석에서 나와 현수막을 펼쳤다. ‘에이즈 혐오는 HIV 감염인 인권과 함께 갈 수 없다’, ‘감염인 관리가 아니라 에이즈 혐오가 문제다’, ‘에이즈 치료비 운운하지 말라. 치료는 최선의 예방이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순간 주최 측 참가자들이 달려 들어 현수막을 빼앗고 활동가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한 여성에게 남성 여럿이 달려들기도 했고, 혼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감염인 활동가에게도 막무가내로 현수막을 빼앗았다.
그들은 성소수자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너 동성애자냐?”, “동성애가 자랑이냐?”, “에이즈 걸린 게 자랑이냐?”, “내 자식 너 같은 동성애자 안 되도록 여기에 온 거다” 하며 모욕하며 소리를 질렀다. 곳곳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현수막을 지키려고 몸싸움을 하다가 손가락이 꺾이고 상처가 나기도 했다.
주최 측은 곧바로 112와 119에 신고해 경찰과 소방관들을 불렀고, 국회 방호원들도 곧장 왔다. 국회 방호원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경찰을 불러서 연행하겠다”며 항의 시위자들을 위협했다.
그럼에도 에이즈 감염인과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꿋꿋이 현수막을 펼치며 “감염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라”, “동성애 혐오 중단하라” 하고 외쳤다.
결국 이 항의로 에이즈 감염인 활동가 윤가브리엘 씨가 연단에 서서 1분 발언을 할 수 있었다. 윤가브리엘 씨는 부축을 받아 연단에 서서 절절하게 말을 이어갔다.
“개회사에서 한 말 잘 들었다. 에이즈 무서운 병 맞다. 예방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예방이 아니다.
“보수 기독교는 에이즈를 혐오하고 감염인을 문란자, 성소수자들을 변태 성욕자 취급한다. 이런 혐오는 오히려 에이즈를 확산시킨다. 콘돔을 쓰면 에이즈는 예방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혐오가 아니라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에이즈 환자는 죄인이 아니다. 범죄자가 아니다.”
“콘돔”이라는 말이 나오자 주최측 참가자들은 야유의 함성과 비웃음을 보냈다. 그러나 윤가브리엘 씨의 말처럼 에이즈는 충분히 전염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병이다. 오히려 사회적 낙인과 혐오가 에이즈 환자들을 더더욱 음지로 내몰고 있다.
한편, 주최 측은 <노동자 연대>를 포함한 진보 언론들에게 ‘이 행사와 1분 발언에 대해 보도하지 말라’고 위협하며 고소고발을 경고했다. 심지어 반말로 윽박을 질러댔다. 이런 태도는 자신들의 행위가 혐오임을 증명하는 것일 뿐이다.
이번 기습 항의 시위가 없었다면 동성애 혐오 세력들은 자신들의 행사가 국회에서 성대하게 잘 치러졌다며 기세가 올라갔을 것이다. 그 점에서 이번 항의는 동성애·에이즈 혐오 우익들에게 한방 먹인 통쾌한 일이었다. <국민일보> 기자 백상현은 동성애자들이 행사를 방해했다며 짜증 섞인 기사를 올렸다.
항의에 참가한 활동가들은 앞으로 혐오에 맞선 싸움을 확대해 나가자고 다짐했다.
자유한국당 규탄 기자회견
“에이즈는 질병일 뿐 차별과 혐오를 중단하라!”
기습 시위에 앞서 같은 날 오전 11시, 동성애와 에이즈를 연결시키며 동성애 혐오와 에이즈 공포를 부추기는 자유한국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당사 앞에서 열렸다.
기자회견장에는 HIV/에이즈 감염인 인권 운동의 상징인 빨간 리본을 옷에 단 참가자들과 가지각색의 빨간 옷을 입은 참가자들이 모였다. HIV/AIDS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가 기자회견을 주최했다.
기독교 우파는 HIV/에이즈 감염인들의 건강은 깡그리 무시하고 그저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기 위해 에이즈 공포를 조장해 왔다. 이들은 에이즈 치료 지원도 줄여야 한다며 난리다.
최근 자유한국당 같은 적폐 세력들은 이런 혐오 세력과 손잡고 동성애 혐오를 부추기는 데 여념 없다. 대선 기간 홍준표가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가 창궐한다’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 동성애가 ‘근친상간, 소아성애, 시체강간, 수간’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 자유한국당 이채익은 최근엔 ‘전 세계 에이즈 감염률이 감소하는 가운데 유독 우리나라만 증가한 것은 동성애 때문’이라는 망언을 쏟아냈다.
심지어 보건복지위 자유한국당 의원 윤종필, 성일종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에이즈 환자가 ‘세금 폭탄’의 주범이고 ‘귀족환자’라고 주장하는 염안섭 수동연세병원 원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부르기도 했다.
기자회견의 첫 발언을 한 권미란 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요양병원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활동가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벌어진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동성애 혐오를 규탄했다.
“염안섭이란 자는 수동연세병원 원장이자 에이즈 환자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하지 못하도록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에이즈 혐오를 선동하는 대표적인 자입니다. … 윤종필 의원과 염안섭은 국회에서 ‘에이즈 환자들에게 복지가 너무 많이 가고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보건복지 위원이란 자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도 읽어보지 않나 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2013년부터 이미 모든 감염인들이 약을 먹고 치료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권고했습니다.”
HIV/에이즈 감염인 당사자인 윤가브리엘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대표는 절규하듯이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분노에 차서 사회자에게 자신을 기독교 우익들이 에이즈 환자를 비난할 때 지칭하는 ‘귀족환자’라고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유한국당이 말하는 ‘귀족환자’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기가 막힌 지 낱낱이 말해주겠습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들이 에이즈를 이유로 그 어느 것 하나 보장되는 것이 없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치료받고 일하고, 사랑하고, 사람이라면 누려야 할 마땅한 그 어느 것도 보장되지 않는데 이것이 ‘귀족환자’의 삶이라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지껄이고 있습니다!
“우리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검찰의 적폐청산을 위한 수사가 ‘망나니의 칼춤’이라고 했는데 당신들이야 말로 세치 혀로 사람 죽이는 그런 망나니나 되지 마십시오!”
김찬영 한국게이운동단체 친구사이 대표,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도 자유한국당이 자신의 정치적 회생을 위하여 동성애 혐오와 에이즈 공포를 부추긴다고 비판하는 발언을 이어나갔다.
기자회견 도중에도 에이즈 환자 혐오를 드러내며 기자회견 참가자들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유한국당 당사 앞 문재인 탄핵 서명 운동 부스에서 서명하던 중년 여성 세 명이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한 중년 남성은 기자회견 참가자들 앞에 가래침을 뱉고 갔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굴하지 않고 자유한국당을 향해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에이즈는 질병일 뿐 차별과 혐오를 중단하라!”, “에이즈 혐오 부추기는 자유한국당 규탄한다!”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HIV/에이즈 감염인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동성애 혐오 세력에 맞서 단결해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