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금) “박근혜 즉각 퇴진 운동 ― 중간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대학생 시국 토론회가 열렸다. “박근혜 정권 퇴진!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이하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학생 60여 명이 참가해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사회는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 공동대표인 동국대 안드레 총학생회장이 맡았다.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박혜신, 사회변혁노동자당(이하 변혁당) 학생위원회 김혜린,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이하 민대협) 임혜성, 제4기 전국교육대학생 연합(이하 교대련) 김문노 집행위원장이 발제를 했다.
토론회는 발언이 많아 활발했고, 운동의 힘에 고무된 분위기였다. 운동 평가와 과제를 둘러싸고 몇 가지 쟁점이 형성돼 논쟁도 활발히 벌어졌다.
즉각 퇴진과 적폐 청산
발제자들은 모두 운동의 성격이 단지 박근혜 개인이 아니라 박근혜의 정책들과 정부에 대한 분노가 쌓여 분출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박근혜-황교안을 포함한 정권의 즉각 퇴진과 적폐 청산을 위해 운동이 계속 전진해야 한다는 과제도 공통으로 제시했다. 동시에 발제자들 사이에 강조점이나 분석의 차이도 드러났다.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박혜신은 박근혜 정권 자체가 제1의 적폐이며,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온갖 적폐들을 날려 버리기 위한 투쟁들이 결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혜신은 “박근혜-황교안 내각의 즉각 퇴진을 요구”해야 하며, 황교안을 인정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에게 의존하지 말고 거리의 운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에 맞선 투쟁과 박근혜식 정책에 맞선 투쟁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고려대의 대학 구조조정 철회 투쟁이 승리한 것을 예로 들었다. 철도 파업이 박근혜 퇴진 운동에 기여한 바도 언급하며 “노동개악에 맞선 노동자들의 파업이 확대된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혁당 학생위원회 김혜린은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를 지속”하고 있는 “제2의 박근혜인 황교안이 사퇴해야” 하며, “적폐 청산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박근혜-재벌총수 구속을 연결고리로 해 박근혜 즉각 퇴진의 고삐를 놓치지 않으면서 재벌을 상대로 투쟁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며 재벌에 맞선 투쟁을 강조했다. 한편, 박근혜 정권의 즉각 퇴진 사유는 박근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변혁당 학생위원회가 반(反)재벌 투쟁을 강조한 것은 체제의 최대 수혜자인 재벌을 공격하는 것을 통해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 듯하다. 재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 속에는 자본과 국가, 정치체제와 경제체제가 모두 포함돼 있다. 자본 중에서도 재벌을 공격하는 것이 체제에 도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보는 것은 다소 협소한 관점일 수 있다.
또, 재벌에 맞선 투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다소 모호했다. 재벌 총수 구속 같은 요구는 마땅히 필요하다. 그런데 더 나아가 재벌에 맞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재벌에 맞서 가장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투쟁의 주체는 재벌 빼고 모두 다가 아니라 노동계급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재벌에 고용된 노동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 개악 반대, 구조조정 반대 같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투쟁들을 지지하고 승리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당면 과제로 제시할 수 있다.
교대련 김문노 집행위원장은 적폐 청산과 새로운 민주 사회 건설을 강조했다. “등록금 문제만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 아르바이트, 주거권, 교육 정책, 고용 제도, 노동 환경, 외교와 안보, 한반도 평화와 통일” 등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대학생들과 연결돼 있으며, 진정으로 대학생들이 원하고 살기 좋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함께 대화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문노는 이 과정을 통해 대학생들의 요구를 정책화하고 조기 대선에 목소리를 내자고 제안했다. 물론 우리의 요구를 토론하고 정식화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대선에 이런 정책이 반영되길 바라는 것도 공감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을 반영시키기 위해서라도 강조점은 선거 그 자체가 아니라 거리의 운동에 있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살펴보겠다.
민대협 임혜성은 탄핵이 “기만”이라고 강조했고 헌재에 ‘탄핵 촉구’를 하는 것도 반대했다. 물론 운동이 탄핵이라는 우회로를 통하기보다는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 시위를 일관되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함정이 많은 방식이라 할지라도 탄핵은 박근혜를 퇴진시키기는 방법의 하나이므로, 지금 상황에서 이를 반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헌재가 즉각 퇴진을 원하는 대중적 열망을 저버리지 않도록 박근혜를 조속히 탄핵하라고 압력을 가해야 한다. 청중 토론에서도 “탄핵은 기만”이라는 입장에 비판적 제기가 많았다.
적폐 청산 요구는 운동의 발전을 가로 막을까?
청중 토론에서 한 총학생회 신임 당선자는 “규모가 커지는 데 중요했던 것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단일한 요구였다”고 평가하며, 적폐 청산 요구나 헌법재판소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런 요구들이 운동의 규모를 줄일 것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나 운동의 규모가 작아진 것은 국회가 탄핵한 이후 낙관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고 봐야 할 듯하다. 운동의 규모를 유지하고 키우려면, 황교안 내각, 헌법재판소, 적폐들을 더 폭로하고 공격해야 한다. 기성 정치인들과 권력 기구를 폭로하는 것을 통해 왜 거리에 나와야 하는지 말해야 거리의 운동이 더 강화될 수 있다.
퇴진 운동의 바탕에는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지난 4년간의 악행이 있다. 경제 위기 하에서 커진 빈부 격차와 불평등, 대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특혜, 강대국과의 군사 동맹으로 희생되는 평범한 민중의 삶, 3백4명의 생명보다 더 중시된 대통령의 프라이버시 등. 따라서 이에 맞선 투쟁들이 결합돼야 운동이 더 강력해질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 퇴진 운동과 부문 운동의 관계
박근혜 퇴진 운동과 부문 운동의 관계에 대한 토론도 이뤄졌다.
인천연합 경향의 한 총학생회장은 “적폐 청산을 위해서 노동자들이 각자 회사나 현장으로 돌아가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학생들은 교육 문제, 청년 문제, 최저 임금 등을 해결하는 경제 투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폐 청산을 위해 각자 부문에서의 운동이 중요하다는 제기를 한 것이다.
변혁당 학생위원회의 한 활동가는 “지역의 투쟁은 광장에 모여야 해결된다. 부문과 지역 대(對) 중앙으로 나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답변했다. 이 발언은 중앙의 운동에 더 강조점을 둔 것이었다.
노동자연대 이대모임 회원은 “거리의 투쟁과 대학의 투쟁은 단계적이기보다는 동시에 진행될 수 있고, 서로 고무하는 관계”라며 투쟁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도 이화여대, 고려대에서 벌어진 투쟁이 박근혜 퇴진 운동 속에서 벌어져 승리한 것처럼 중앙과 부문의 투쟁이 동시에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소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한편, 청중 토론 시간에 헌법재판소가 독립적 헌법 기관이기 때문에 압력을 행사하려 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통과된 탄핵안의 칼자루를 헌법재판소가 마음껏 휘두르게 둘 수는 없다. 대중 운동이 국회를 견인해 온 것처럼, 헌법재판소가 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헌법재판소에도 압력을 넣어야 한다. 보수야당들은 “질서 유지”를 위해 헌법재판소와 황교안에 압력 넣기를 꺼리고 있다. 이래선 헌법재판소가 (제 멋대로 굴) 자율성만 키워 줄 뿐이다. 헌재 재판관 출신자들조차 헌재의 판단은 정치적이고 여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시인한다.
변혁당 학생위원회는 아마 “조기 탄핵”을 요구하면 운동이 헌법재판소에 종속될 것으로 보는 듯하다. 그러나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박혜신은 발제에서 헌법재판소를 과도하게 존중하는 입장도 문제이지만, 탄핵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는 헌법재판소를 투쟁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도 약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기 탄핵”은 오히려 헌법재판소를 믿지 않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내걸 수 있는 구호이며, 현재 퇴진 운동에서 필요한 요구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현실의 운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운동을 접고 로비나 하자는 식이거나 방향을 전환해 메인 타깃을 헌법재판소로 잡자고 한다면 문제겠지만, 운동의 메인 타깃을 박근혜-황교안 정부와 적폐 청산으로 분명히 하면서 헌법재판소에도 “조기 탄핵”을 요구하는 것은 필요하다.
조기 대선과 민주정부 수립 요구를 어떻게 봐야 할까
조기 대선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토론이 됐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집행위원장은 박근혜 퇴진 이후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교대련 집행위원장 김문노도 발제에서 조기 대선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연대 이대모임 회원은 “선거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하고 대안도 제시해야 하겠지만, 박근혜가 아직 반쯤 물러났을 뿐 반전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조기 대선에 대해선 지금 강조해서 제기하는 것은 이르다. 박근혜의 적폐 청산 과정에서 선거는 부차적이다. 여러 개혁들이 박근혜 정부 아래서 운동으로 쟁취됐다” 하고 발언했다.
한 변혁당 활동가 또한 “대안을 현재 시스템 내부로 국한하는 것은 대선과 선거로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시스템 자체에 문제를 제기해야만 한다. 근본적으로 운동을 발전시키는 것만이 박근혜 퇴진 운동의 성과를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경제 위기라는 조건 때문에 앞으로 어떤 정부가 집권하든 금방 한계를 드러내고 우리가 직접 투쟁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물론 선거에서 진보적인 열망을 대변할 후보가 당선하길 바라야 하고, 정책에 대한 입장을 내놓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선거에서 우파들을 패배시킨다면 사람들의 개혁 열망이 더욱 커지고 싸움에 나설 자신감도 커질 수 있다. 그럼에도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개혁을 이루는 것은 결코 자동적이지 않을 테고 독립적인 대중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즉각 퇴진을 포함한 적폐 청산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운동이 거대하고 심도가 있었던 만큼 토론회에는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참가했다. 이 때문에 현재 운동의 참가자들이 어떤 의견들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무척 유익한 토론회였다.
토론회에서 운동이 지속되고 더 전진하길 바라는 공통된 열망이 느껴졌다.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가 학생회와 학생단체들을 광범하게 모아 결성될 수 있었던 만큼, 이 기구를 소중하게 느끼며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고자 하는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탄핵 가결 이후에도 운동에 수십만 명이 참가하고 있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황교안 내각을 사퇴시키고 헌재가 딴 생각을 못하게 하려면 이 운동을 단호하게 전진시켜야 한다. 토론회에 참가한 다른 학생들처럼 나도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가 이 운동에서 계속 중요한 구실을 해 나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