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독재 미화, 시장주의 예찬, 노동자 착취 은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저지하자
박근혜 정부가 기어코 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공식 발표했다. 국정교과서는 집필과 편찬, 수정과 개편 권한이 모두 교육부에 있는 독점적 지위의 ‘교과용 도서’다. 그런 만큼 국정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역사 해석을 가르치는 데 이용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정화를 정당화하려고 현행 검정교과서들이 “좌편향”이고 “종북” 성향이라는 색깔공세를 퍼붓고 있다. 그러나 국정화 시도에 대한 반발도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이미 많은 역사학자와 교수들, 현직·예비 역사 교사들이 국정화 시도에 반대 목소리를 높여 왔다. 고려대, 경희대, 부산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외국어대, 성균관대, 서울시립대 등에서 교과서 집필 거부 교수 선언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대학생들의 국정화 반대 성명도 줄을 잇고 있다. 청소년들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고 있고, 국정화 반대 서명 운동 동참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17일 집회에서는 시험기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참가해 함께 촛불을 들었다.
국정화 발표 이후 박근혜 지지율도 하락했다. “박근혜의 뜻”을 좌절시켜야 한다는 공감과 박근혜 정부를 향한 분노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편향성’ 운운하며 교육의 ‘중립성’을 거론하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교과용 도서 편찬 심의위원회’를 주도할 자들의 면면을 보면 편향을 바로잡겠다는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가 금방 드러난다.
새로 국사편찬위원장이 된 김정배는 1982년 고교 《국사》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연구진의 일원이었다. 그 교과서는 전두환의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을 미화했다. 김정배는 고려대 총장 시절 등록금 인상과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것은 물론이고, 학교가 학교 공금으로 총장 전기요금 등을 대납한 것이 폭로돼 불명예 퇴진을 했던 부패한 우익 인물이기도 하다. 그 밖에 이승만을 ‘국부’라 예찬하거나, 뉴라이트 단체의 원로자문 이었거나, 8월15일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교육부 산하 인사들로 있다.
친일 독재 미화 이상의 목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데에는 박정희의 명예 회복이나 친일·독재 미화 이상의 목적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가 9월 23일 고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특징을 함께 살펴보면, 그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배계급 입장에서 서술된 역사를 더 많이 가르치려 한다. 그래서 앞으로 학생들은 초중고교를 거치며 “지배층 중심의 정치사만 세 번 배우”게 된다.반대로 일제 강점기 의병 투쟁 같은 저항 운동을 다루는 내용은 축소된다. 세계사 교육과정도 비슷한 방식으로 바뀐다.
둘째, 시장주의와 경제 성장 예찬 등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교육을 더한층 강화하려 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역사 교육과정의 경우, 기존의 ‘산업화의 빛과 그늘’이라는 식의 관점에서조차 더 후퇴해 경제 성장의 성과를 주로 강조하는 내용이 강화된다.
셋째, 학교 교육의 목표가 기업에 필요한 노동자 육성하기라는 점을 더욱 노골화하려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역량 중심” 교육과정이라는 명목으로 기업에 필요한 능력 즉, 졸업 후 노동시장에 진출했을 때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고 기업이 원하는 노동자가 되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에는 우파를 결집시켜 총선을 돌파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 색깔 논쟁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보수층 결집을 위해 내놓는 단골 카드다.
무엇보다 박근혜의 국정화 시도는 친일파와 독재를 미화할 뿐 아니라, 노동자 착취와 투쟁의 기억을 은폐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여 앞으로의 노동자 착취 강화도 정당화하겠다는 뜻이다. ‘쉬운 해고, 임금 삭감, 비정규직 확산’을 낳는 “노동개혁”을 수월하게 밀어붙이기 위한 수순이다. 새정치연합은 국정화를 반대하지만,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새누리당과 뜻을 같이 한다.
따라서 한국사 국정화는 기성 정치권에 맡겨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노동계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박근혜의 “역사쿠테타”를 막으려면 대중 행동이 건설 돼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전교조와 민주노총 등 조직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노동계급이 국정화 반대 투쟁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 투쟁에 학생들의 지지가 결합된다면 박근혜 정부를 위협할 힘을 발휘할 수 있다. 2008년 촛불 항쟁 때 1백만명이 거리로 나섰지만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막지는 못했다. 정부를 진정으로 압박할 노동자들의 대중 투쟁과 파업이 실종된 고리였다. 만약 2013년도 철도 파업처럼 국정화 저지 운동에서도 노동자 투쟁에 학생들의 지지가 결합된다면 박근혜 정부를 위협할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학생들은 학내에서 국정화 교과서 반대 여론 확산과 대중 행동 동참을 호소하기 위한 대자보 붙이기, 토론회, 서명운동 등과 같은 국정화 교과서 반대 활동에 적극 동참하자 !
2015년 10월 19일
노동자연대 학생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