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의 ‘재선거’ 요구에 동조하지 말자

6월 항쟁 39주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독재자 이승만을 찬양하고, 광주항쟁을 모욕하며, 윤석열의 군사 쿠데타를 옹호한 세력이 감히 민주투사 행세를 하는 역겨운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윤석열은 민중들이 피로 쟁취해 낸 민주주의를 무력으로 파괴하려 했다. 핵심 명분은 부정선거 음모론이었다.


윤석열의 쿠데타 기도는 대중의 저항에 부딪혀 좌절됐으나 쿠데타를 계기로 한국에서 극우가 급성장했다. 쿠데타로 “계몽”된 이들은 서울서부지법에서 광기 어린 폭동을 일으켰다. 국민의힘은 계엄을 옹호한 자들이 당권을 잡으면서 극우화했고, 거리 시위와 조직 건설 등 극우의 기층 세력화가 가속화됐다.


그리고 현재 극우는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면서 6·3지방선거에서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이로 말미암은 대중의 정당한 분노를 교활하게 이용하려 한다.

선관위 규탄 정당하다

선관위의 선거 부실 관리는 황당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선관위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분노가 이는 것이 당연하다.


전국의 여러 대학 학생회들은 선관위를 규탄하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완전히 정당한 목소리다.


곳곳에서 이번 사태를 “참정권 침해”라 규정한다.


물론 법적·개별적 층위에서 “참정권 침해”라는 규정은 과장이 아니다. 헌법 제24조가 보장하는 선거권은 “실제로 투표할 수 있음”을 뜻한다. 서울 송파·강남·광진 등 일부 투표소에서 마감 시각까지 줄을 섰다가 돌아간 유권자나 서너 시간을 대기한 유권자에게는 선거권의 구체적 행사가 실제로 봉쇄됐다.


그런데 “참정권 침해”라는 규정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에는 과장의 여지가 있다.
문제가 된 곳은 서울 22개 투표소이며, 이것이 광역 단위 당락을 뒤집었다는 정황은 아직 없다. 국지적 관리 실패를 마치 선거 전반에 대한 참정권 박탈과 동일시하는 것은 비약이다.


선관위는 송파에서 본투표 대상 유권자의 약 50퍼센트 분량만 인쇄했고, 구·서울시·중앙선관위 어느 단계에서도 걸러내지 못했다. 안일한 대처, 즉 명백한 과실이다. 그런데 “침해”라는 말은 능동적이고 고의적인 가해를 함의하기 쉽고, 여기에 “부정선거” 서사가 더해지면 과실이 음모로 둔갑한다.


투표용지 부족은 선관위의 무능과 부실 관리에서 비롯한 참정권 침해 사건이지, 결과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부정선거와는 거리가 멀다. 정당한 분노를 음모론으로 연결하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흐린다.


극우 세력이 “참정권 침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목적은 과실 책임 추궁에 있지 않다. 이들은 선거 정당성 자체를 흔드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참정권 침해’라는 용어는 이미 부정선거 진영의 진입로로 전유되고 있다. 여야 모두 수습보다 정략적 계산에 몰두하면서, 공방이 길어질수록 음모론과 선거 불신만 커지는 국면이다.

정당한 불만 이용하려는 극우에 맞서자


극우 세력은 지방선거 당일부터 투표함 반출 봉쇄 시위를 주도했고, 개표가 끝나기도 전에 공공연히 “부정선거”, “선거 무효” 등을 주장했다. 장동혁, 황교안, 전한길 등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해 온 정치인들이 시위대를 지지 방문했다.


그러다 시위 규모가 커지자 극우는 “참정권”과 “재선거”를 핵심 구호로 삼았다. 공평무사하게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을 하는 것처럼 위장해 외연을 확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재선거”로 요구를 통일한 이후에도 올림픽공원 시위에서 부정선거론자 미국 극우 모스 탄은 환영을 받았다. 건물 출입자, 주변 행인, 택배 기사들, 심지어 여자 청소년 핸드볼 선수들 상대로 불법적인 검문·검색이 벌어졌다. 혐중파 이준석마저 ‘당신 엄마 중국인이냐’는 공격을 받았다.


대학가에서 ‘윤어게인’ 학생들도 건국대,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등에서 극우 이력과 색채를 감춘 채 ‘민주주의’와 ‘참정권’을 부르짖으며 학내 영향력을 키우기려 하고 있다.


극우의 이런 기만적 책략이 먹힌다면 극우는 더한층 기세등등해질 것이다. 극우가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커다란 위협이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극우들의 민주주의 위장술을 폭로하고 행동으로 맞섬으로써,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극우에 반대하는 우리가 압도적 다수임을 보여 줘야 한다.


민주화 투쟁의 역사는 사회를 바꿀 진정한 힘은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에 있음을 가르쳐 준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정당한 불만을 이용하려 하는 극우를 그냥 둬선 안 된다. 6월 항쟁의 정신을 계승하여, 반민주세력에 맞서자.

2026년 6월 10일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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