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관리위원회의 어처구니없는 부실 관리가 극우 세력의 과대망상적 부정선거 음모론에 빌미를 제공했다.
민주적 권리를 중시하는 대중이 선관위에 정당한 불만을 표출하는 틈을 타, 극우 세력은 민주주의 투사 행세를 하며 부정선거론의 군불을 지피고 있다. 서부지법 폭동 등 반민주적 폭력을 행사, 옹호하는 데에 거침이 없었던 극우 세력은 선관위를 향한 대중의 분노에 올라타 정상적인 정치 세력인 양 위장하고 입지를 강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우리 대학에서는 평소 극우 활동을 하던 학생이 선거관리위원회 규탄을 안건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향해 학생총회 소집을 촉구했다. 이번 서명 운동의 발의자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고문 및 살해하고 국회를 해산해 군화발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짓밟으려 한 윤석열의 쿠데타를 옹호하고 윤석열 탄핵에 반대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선거 결과를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전한길을 지지해 왔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선거와 민주주의 수호의 화신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극우 세력은 선관위의 부실 관리에 대한 대중적 불만을 빌미로 국제 극우 운동의 구호인 “부정선거(Stop the steal)”를 외치고 있다. 부정선거론은 음모론을 유포해 기성 권력자들과 국가 기관에 대한 대중의 만연한 불신을 악용하고 조직화에 활용하는 국제 극우의 방식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가 2020년 대선 패배 후 정확히 그런 방식으로 극우 세력을 강화해 재선을 도모했다.
윤석열은 ‘총선 부정선거’를 내세워 국회를 해산할 명분을 마련하려 했다. 이처럼 쿠데타 옹호와 부정선거론은 서로 얽혀 있다. 지방선거 직후, 윤석열 변호인단의 송진호는 “부정선거에 함께 나와 항거해 달라”고 호소했다.
부정선거론자인 황교안과 전한길 등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빠르게 이용해 ‘부정선거가 증명됐다’며 당일 밤부터 시위를 벌였다. 장동혁 역시 6월 5일 투표함 반출을 봉쇄하는 극우 집회에 찾아가 지지를 보냈다. 장동혁은 지난 3월 국민의힘에 부정선거 TF 신설을 주문하기도 했다. 거리 극우의 전투 구호를 공식 정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대학가 탄핵 반대 시국선언을 했던 자유대학 등 극우 청년 조직들도 선거 당일 신속히 투표소로 결집했다. 부정선거론을 줄기차게 주장해 온 학생 극우들이 여러 대학에서 선관위 규탄 주장을 동시에 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사실 민주주의 수호에는 관심이 없다. 학생들의 선관위에 대한 정당한 불만을 이용해 대학가에서 영향력을 키우고자 한다. 나아가 사회 전반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상식적 주장인 양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려 한다.
극우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이들은 학생총회라는 민주적 의결기구의 정당성을 외피로 삼아, 자신들의 주장과 세력에 자신감을 불어넣으려 할 뿐이다. 이들의 성장은 민주적 권리에 대한 더한층의 공격으로 이어질 것이다.
학생 극우 세력은 극우 이데올로기를 교묘하고 세련되게 다듬는 데 일조한다. 이는 극우 사상이 더 폭넓게 수용돼 정상화하는 효과를 낸다. 나아가 기층 극우 운동을 확대하는 자양분이 된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대학 구성원들이 극우의 호소에 호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반민주적 실체를 숨기려는 극우의 시도를 좌절시키고, 공공연한 극우 반대 목소리와 행동을 키워 나가야 한다. 민주주의를 수호할 진정한 힘은 쿠데타에 항거한 이들의 집단적 투쟁에 있다.
이재명 정부의 무능한 내란 청산으로 극우 세력이 자신감을 얻다
가장 큰 문제는 이재명 정부의 내란 청산이 지연되는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를 거치며 극우 세력이 다시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이다.
지난 1년간 이재명 정부의 내란 청산과 사회 대개혁 작업은 매우 지지부진했다. 이는 정부가 대중적 민주주의의 확장보다 사법적·제도적 절차를 통한 질서 회복에만 지나치게 치중한 결과다.
민주당은 선거를 통해 내란 세력을 청산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 국민의힘은 오히려 살아났다. 상징성이 큰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가 자리를 지켰다. 내란 주요 임무 종사자인 추경호가 대구시장에 당선됐고, ‘윤 어게인’ 이진숙과 김태규가 국회에 입성했다.
국민의힘 소속이 아닌 극우 인사도 만만치 않게 득표했다. 국회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도록 지시한 계엄군 장교 김현태는 인천 계양을에 출마해 13퍼센트를 득표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노골적인 동성애 혐오를 내세운 조전혁 후보가 114만 표를 득표해 2위를 기록한 것도 경각심을 가질 일이다.
이번 선거 기간 동안 여권은 후보의 면면이나 선거 운동 기조 면에서 진보성은커녕 반(反)우파적인 선명성조차 보여 주지 못한 채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변화를 기대하던 진보 지지층에게 확실한 지지 동기를 부여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투표 직전에야 국민의힘의 추격세를 감지하고 뒤늦게 ‘내란 청산’을 호소했지만, 진정성 있게 다가갈 리 만무했다. 오히려 많은 진보 지지층에게 민주당 지도부가 내란 청산을 그저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불신만 심어 주었을 뿐이다.
내란 청산이 이토록 지지부진하니, 극우를 비롯한 우익 전반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든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 결과 그들은 빠르게 자신감을 회복하고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재결집에 성공한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이재명 정부가 우익의 결집을 막아내지 못했으며, 자칫 극우 세력이 다시 날뛸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결국 극우를 억누르고 온전한 내란 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완수해 낼 동력은 개혁을 염원하는 대중 스스로의 투쟁에 달려 있다.
2026.06.05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연세대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