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일붕 노동자연대 운영위원
2025년 6월 22일,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이 이란의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핵시설에 대해 “매우 성공적인” 공습을 감행했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그는 이란에 보복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아직 많은 목표물이 남아 있다”고 협박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트럼프의 “대담한 결정”을 칭송하며 이 공격이 “중동을 번영과 평화로 이끌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뻔뻔스러운 왜곡은 결국 현실과 정반대임이 드러났다. 이란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하며 시작된 전쟁은 지금 5주째로 접어들었고,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과 석유 저장고 공격으로 테헤란은 검은 연기에 뒤덮였으며, 유출된 기름이 하수구로 스며들어 불길의 강이 흘렀다. 1000만 명 가까이 살고 있는 도시의 광경은 묵시록적이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했고, 세계 원유의 5분의 1 이상이 통과하는 이 좁은 길목이 막히자 유가가 폭등했으며 세계 경제는 일제히 하락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두 국가 사이의 갈등이 아니다. 이것은 제국주의 전쟁이자 계급 전쟁이다. 세계 어디서나 노동계급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재점화되며, 이미 생계비 위기로 허덕이던 수많은 대중의 삶이 더 나락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교역의 차질이 가시화되고 있다. 전쟁의 총성은 중동에서 울리지만, 그 경제적 파편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식탁을 직격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란에 대한 전쟁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계급 전쟁이다.
이 글은 이 전쟁의 성격을 분석하고, 러시아 혁명가 레닌(1870~1924)과 트로츠키(1879~1940)가 남긴 교훈과 현재 혁명적 국제주의자들의 실천을 종합해, 우리가 구사해야 할 전술이 무엇인지를 주장하고자 한다.
이 전쟁의 역사적 맥락: 1953년부터 현재까지의 미국 제국주의
미국의 이란에 대한 적대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역사를 7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53년, 미국 중앙정보국 CIA와 영국 대외정보국 MI6는 이란의 좌파적 애국주의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크에 대한 쿠데타를 기도했다. 모사데크는 이란의 석유를 국유화하려 했고, 이는 미국 등 서방 자본주의의 이익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쿠데타는 성공했고,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이 복권돼 약 25년간 잔혹한 독재를 자행했다.
팔라비는 이란 석유 수익과 국가 자원을 이용해 경제를 근대화하는 한편, 세계 5위 수준의 군대를 건설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의 중동 내 가장 중요한 동맹이 됐고, 테헤란에는 CIA 중동 지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팔라비는 이란 사회의 광범한 계급·계층을 이반케 만들었다. 부패한 정권 하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과실은 압도적으로 부유층과 팔라비 가문에 돌아갔다.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권위주의 독재가 강요한 자유 제한에 저항했다. 보수적 성직자들의 정치적 기반인 바자르(시장) 소상인들은 점점 더 대자본에 의한 압박을 받았다. 석유 산업과 그 외 산업의 노동자들은 국왕의 잔혹한 사박(보안경찰)이 통제하는 어용노조와 관리자들을 증오했다. 쿠르드족, 발루치족을 비롯한 소수 민족들은 민족 권리 부정에 분노했다.
1977년 6월부터 대규모 시위가 분출하기 시작했다. 1978년 가을,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테헤란 석유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고, ‘검은 금요일’인 9월 8일 국가는 수십 명의 노동자를 학살했으나 이는 오히려 파업이 다른 도시와 석유 기지(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비해 석유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핵심적 시설)로 확산케 만들었다. 이것은 팔라비 정권에 대한 치명적 일격이었다. 정권이 석유 수익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 파업들로부터 ‘쇼라’라는 노동자 위원회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 위원회들은 일터를 접수하고 국왕이 임명한 관리자들을 몰아내고자 했다. 이는 1917년 10월 러시아 이후 볼 수 없었던 진정한 노동자 혁명의 싹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란 좌파의 최대 조직인 투데당의 정치는 이 역사적 도전 과제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 소련의 지지를 받는 공산당으로서 투데당은 1979년 2월 1일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망명지에서 귀국하자 그를 혁명의 지도자로 받아들이고 그를 중심으로 단합해 지지했다. 이란 좌파(투데당뿐 아니라 페다이 다수파와 무자헤딘도)에서 득세하던 견해는 이란이 경제적으로 저발전했고 이슬람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서 노동자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선 민주 혁명, 후 노동자 혁명이라는 2단계 혁명론). 그러나 사실 이란은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의 러시아보다 경제적으로 더 발전했으며, 이란 노동계급은 갈수록 자신 있게 권력에 도전하고 있었다.
혁명 직전에 이란의 대표적 지식인 알리 샤리아티의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정치가 대중적으로 엄청난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호메이니는 권력을 잡기 위해 그 언사의 일부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즉, 혁명 과정에서 호메이니와 새로 건국된 이슬람 공화국은 샤리아티 류의 반제국주의·사회해방적 언어를 빌려 진보적인 척했다.
그러나 권력이 공고화되자마자 호메이니와 새 국가는 혁명 초기에 취했던 진보적 외양을 내던져 버렸다. 쇼라는 해산됐고, 좌파는 탄압받았으며, 여성과 소수자들은 체계적 차별을 받았다. 1953년의 쿠데타가 심은 씨앗은 결국 1979년 혁명의 왜곡된 결실로 수확됐다.
현재 이란 국가는 시아파 이슬람의 보수적 성직자 집단이 통치하는 자본주의 국가다. 그리고 지역 강국의 지위를 추구하는 하위
이는 이란을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튀르키예 등 지역 내 다른 국가들과의 하위 제국주의적 경쟁에 묶어 놓는다. 따라서 현재의 미국-이스라엘 대 이란의 대립은 ‘선한 세력 대 악한 세력’의 싸움이 아니라, 중동에서의 패권을 두고 벌이는 강대국들의 충돌이다.
전쟁 거짓말: 핵 꼬투리의 허구성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이란이 핵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하려는 ‘불량 국가’라고 주장하며 공격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 전쟁의 빌미는 거짓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공습 불과 이틀 전, 국제원자력기구
IAEA는 이란의 시설을 사찰해 왔다. 반면 이스라엘은 항상 사찰을 거부해 왔고 핵비확산조약에 서명한 적도 없다. 중동에서 핵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한 진정한 ‘불량 국가’는 이스라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1970년대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도움을 받아 핵무기를 만들었으면서도 여전히 그 보유를 공식 인정하지 않는다.
이 상황은 2003년 이라크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거짓말을 동원했던 미국 조지 부시 2세 정부의 역사를 고스란히 재연한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의 이란 폭격이 오히려 이란을 핵무장으로 내몰 위험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미국 군비통제협회는 이번 폭격이 이란 핵무장의 가능성을 높이고 “다른 국가들이 핵무기 보유를 고려하도록 부추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두려워하는 진정한 이유는 핵무기 때문이 아니다. 이란은 1979년 혁명 이후 중동에서의 미국 패권에 도전해 온 지역 강국이다.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이라크의 민중동원군 등 이른바 ‘저항의 축’을 지원해 왔다. 가자 학살이 시작된 후, 후티는 미국과 이스라엘 연계 선박들을 홍해에서 공격했고,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침공에 맞서 레바논 남부를 수개월간 방어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 ‘저항의 축’을 해체하고, 중동에서 자신들의 절대적 지배를 재확립하기를 원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학살은 미국의 무기와 자금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제국주의에 의존하는 정착민 식민주의 국가로서, 중동에서 미국 제국주의의 경비견 노릇을 해왔다.
트로츠키의 유산: 두 개의 원칙을 동시에
이런 단순하지 않은 상황에서 혁명적 좌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이론적 자원의 하나는 레온 트로츠키의 저술들이다.
트로츠키가 1937년 9월에 쓴 ‘평화주의와 중국: 기자 데블린에 대한 답변’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쟁과 피억압 국가들의 전쟁을 구별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원칙을 세운다. 트로츠키는 중일전쟁에 대해 이렇게 쓴다. “일본 편에서 이 전쟁은 강탈의 전쟁이고, 중국 편에서는 민족 방어의 전쟁이라는 점은 절대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일본 제국주의의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대리인들만이 두 나라를 동일한 반열에 놓을 수 있다.”
트로츠키는 자신의 주장을 계속 밀어붙인다. “노동계급 운동은 노예로 삼으려는 자와 노예화되는 자 사이의 투쟁에서 중립을 유지할 수 없다. 중국, 일본, 그리고 전 세계의 노동계급 운동은 일본 제국주의 도적들에 맞서 모든 힘으로 대항하고 중국 인민과 그들의 군대를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두 번째이자 동등하게 중요한 원칙을 즉각 덧붙인다. “이것은 중국 정부와 장제스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조금치도 전제하지 않는다.” 여기서 트로츠키는 군사적 지지와 정치적 지지를 구분할 것을 요구한다. 일본 침략에 맞서 싸우는 중국의 군사 행동은 지지하되, 그 싸움을 이끄는 장제스에게는 단 한 톨의 정치적 신뢰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계급 조직들은 합법적이고 진보적인 민족 전쟁에 참여하면서도 장제스와 국민당 정부로부터 완전한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공산당은 또다시(1926~27년 실패한 혁명을 암시함) 중국 노동운동을 장제스에게 정치적으로 넘겨주고 있었다. “이것은 두 번째로 저질러지는 범죄이기 때문에 더 끔찍한 죄악이다.”
1939년 7월에 쓴 ‘인도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트로츠키는 식민지 억압에 맞서면서도 민족 부르주아지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인도의 맥락에서 정교화한다. 영국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면서도 인도 자본가 계급의 정치적 지도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억압받는 민족의 민중은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하고 투쟁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민족 부르주아지가 혁명을 배신할 태세가 돼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연속혁명론의 핵심이다. 피억압 나라에서의 혁명은 민족 해방의 과제와 사회주의적 과제를 분리할 수 없다.
트로츠키의 원칙은 현재의 이란 전쟁에도 적용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명백히 제국주의적 침략 세력이다. 막강한 핵 초강대국이 지역 소강국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적 좌파가 이 공격을 지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동시에, 이란 정권 — 자국 민중을 학살하고, 여성과 성소수자를 탄압하며, 노동자들의 독립적 조직을 파괴하는 — 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이란 국가는 1979년 혁명에서 성장했던 노동자 일터 위원회(쇼라)를 짓밟고 들어선 자본주의 국가다. 비록 국가 기구 안에서 상이한 분파들이 활동할 수 있으므로 독재(일당 국가)는 아니지만, 법적·제도적 통제권이 (일반 국민의 접근이 배제된 채) 국가에 독점돼 있고 의사결정 과정이 하향식인 권위주의 국가다. 따라서 이란의 맥락에서 혁명적 입장은 다음으로 요약된다. 미국-이스라엘의 제국주의 공격에 반대한다. 다만 이란 정권에 대한 정치적 지지는 거부한다. 이란 민중 — 특히 노동계급 — 의 독자적 조직과 혁명적 잠재력을 지지한다.
우리의 원칙: 노동계급 국제주의
이 전쟁에서 혁명적 좌파의 원칙은 “워싱턴/텔아비브도, 테헤란도 아니다, 오직 민중의 해방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원칙은 단순한 산술적 중립이 아니다. 이것은 세 가지 주체 모두 — 제국주의 미국 국가, 시온주의 이스라엘 국가, 권위주의적 이란 국가 — 가 천대받는 민중의 이익과 대립한다는 계급 분석에 근거한다.
이 원칙 안에서 우리는 레닌의 ‘혁명적 패배주의’ 전술을 재조명해야 한다. 제1차세계대전 개전 때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거의 다 자국 정부의 전쟁 예산을 승인하며 애국주의에 함몰됐다. 레닌은 어느 쪽이 이기든 노동자에게는 재앙이라며 교전 당사자 양쪽 모두를 배격했다. 그는 자국 정부의 전쟁 승리가 아니라, 전쟁의 참상을 이용해 자국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입장은 당시에 모든 방향에서 공격받았다 — 독일 사회민주당으로부터는 ‘국가의 적’으로, 연합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사회주의자들로부터는 ‘독일의 하수인’으로. 그러나 레닌의 이 독자적 길은 결국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키는 기본 노선이 됐다.
현재 이란 전쟁에서의 혁명적 패배주의는 이렇게 표현된다. 우리는 미국의 이란에 대한 전쟁이 실패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란 정권이 군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을 지지하되, 그 정권에 대한 정치적 지지는 거부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의 경제적 충격이 국제 노동계급에 떠넘겨지는 것에 반대해 투쟁한다.
우리의 전술: 아래로부터의 반전 운동과 이중적 반대
우리는 이란 전쟁에 대해 트로츠키의 정책을 오늘의 언어로 옮겨 분명한 전술 방침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 노력 실패를 지지한다. 이것은 단순히 “평화를 원한다”는 추상적 평화주의가 아니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혁명적 좌파의 위치는 자국 정부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가령 영국 키어 스타머 노동당 정부는 미국의 이란 공격을 “이란의 위협을 완화하기 위한 행동”이라며 지지했는데, 영국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정부의 이 전쟁 지지를 반대하고 노동계급이 전쟁의 대가를 치르지 않도록 싸우는 것이다. 아서 타우넨드는 2026년 1월 기사, ‘이란이 반란에 나서다: 서방에 반대하되 정권을 지지하지 말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미국의 패배를 위해 행동할 것이다. 이란 로켓이 텔아비브에 떨어졌을 때, 우리는 환호하는 사람들 중에 있었다.” 이것은 이란 정권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공세에 저항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 구별은 미묘해 보일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둘째, 이란 정권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거부한다. 동일한 기사에서 타우넨드는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항의 시위를 어떻게든 ‘제국주의적’이라고 묘사하거나, 민중을 거슬러 정권의 편에 서는 것은 잘못이다.” 이란 정권은 일관된 원칙이 있는 반제국주의 세력이 아니다. 가자 학살이 2년 반 동안 계속되는 동안 이란은 지역 내 영향력이 약화될까 두려워 이스라엘을 실제로 공격하기를 거듭 자제했다. 이란은 ‘저항의 축’의 일원들을 지원했지만, 이는 정면 충돌을 피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불의 고리’ 전략의 일환으로 동맹들을 지원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공격과 아사드의 몰락 이후 이 전략은 산산조각 났다. 더욱이 이란 정권이 자국 민중을 어떻게 대해 왔는가를 돌아보면, 2025년과 2026년 겨울에 이란에서 폭발한 항의 시위들 — 인플레이션 급등과 수십 년간 쌓인 억압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 을 “제국주의의 음모”라고 치부하는 것이 전혀 터무니없는 말임이 분명해진다.
셋째, 아래로부터의 혁명 가능성을 지지한다. 아래로부터의 반란은 어떤 강대국이 원하는 것을 넘어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독재와 제국주의에 도전할 잠재력이 있다. 이것은 1979년 혁명 초기에 노동자들이 ‘쇼라’로 알려진 민주적 기구를 설립했을 때 진실이었다. 이것이 핵심이다. 이란 민중은 — 특히 이란 노동계급은 —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정권 교체’ 프로젝트의 도구가 아니다. 그들은 독자적인 역사적 주체다. 그들의 반란은 한 억압 세력을 다른 억압 세력으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두 억압 모두를 넘어설 잠재력이 있다. 물론 그 잠재력이 현실화되려면 독립적인 혁명적 정치 조직이 필요하다.
넷째, 전쟁이 계급 전쟁임을 폭로한다. 호르무즈 해협 폐쇄, 유가 급등, 인플레이션 재점화, 정부 차입 비용 상승, 이로 인한 긴축 재정의 위협, 이 모든 것이 다른 누구보다 노동계급을 가장 무겁게 짓누른다. 전쟁은 자본가들에게는 이윤 기회이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생계 위기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석유·가스 대기업들이 가격을 올리며 막대한 이윤을 챙겼던 것처럼, 이번 이란 전쟁에서도 대기업들은 장기전의 불가피성을 빌미로 가격을 올릴 것이다. 이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단지 이상주의적 평화주의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것이다.
다섯째, 반전 운동을 구축한다. 3월 28일 미국에서는 800~900만 명이, 영국에서는 50만 명이 ‘이란에서 손 떼라, 가자 학살을 끝내라, 이스라엘 무장 해제하라’를 외치며 거리를 가득 메웠다. 영국의 전쟁중지연합은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 “트럼프의 이란 공격은 야만적이고 불법적이며 전혀 정당화될 수 없다. 이것은 중동에서의 전쟁을 확대하고, 학살자 네타냐후를 강화하며, 전쟁 범죄다.”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이 광범한 반전 감정을 조직하고, 그것을 계급적 분석과 결합해 지속 가능한 운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섯째, 반전 운동과 이란 민중 지지를 결합한다. 〈노동자 연대〉 신문에 실린 기사, ‘이란인 역사학자가 말하는 이란 시위의 배경’(2026년 1월 12일)에서 이란인 역사학자는 이란 국내 항의 시위의 단순하지 않은 성격을 조명한다. 그 시위들은 왕정복고를 원하는 왕당파도 실제로 포함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페르시아어 캠페인에 자금을 대며 옛 이란 국왕의 후계자 레자 팔라비에 대한 왕정주의적 정서를 부추겼다. 따라서 이란 국내의 저항 일체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혁명적 좌파의 입장은 이란 민중 중에서도 아래로부터 독립적으로 조직하는 민주적·노동자적 경향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 흐름이 제국주의의 도구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면서.
참고 문헌
- Leon Trotsky, ‘Balance Sheet of the Finnish Events’ (April 1940). https://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40/04/finnish.htm
- Leon Trotsky, ‘Pacifism and China: Answer to Journalist Devlin’ (September 1937). https://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37/09/pacifism.htm
- Leon Trotsky, ‘An Open Letter to the Workers of India’ (July 1939). https://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39/07/india.htm
- Leon Trotsky, ‘The USSR in War’ (September 1939). https://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39/09/ussr-war.htm
[보론] 전국노동자정치협회의 노동자연대 곡해와 파산한 스탈린주의 정치 복원 시도
여기서는 전국노동자정치협회(이하 노정협)의 노동자연대에 대한 곡해를 다룬다. 노정협은 노동자연대가 이란 정권의 사회운동 탄압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노동자연대를 “제국주의의 벗”이라고 비방했다. 이 주장은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완전히 파산한 것임을 아래와 같이 논증한다.
(1) 이란 정권은 일관된 반제국주의 세력이 아니다
노정협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란 정권이 실제로 일관되고 원칙적인 반제국주의 세력이어야 한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이란 자체는 지역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하위
이란 국가의 성격을 명확히 분석해야 한다. 이란은 보수적 성직자가 지배하는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다. 그 지배계급은 다른 모든 자본주의 지배계급과 동일한 이해관계 — 자신의 경제적·정치적 권력 증대와 기존 특권 보존 — 를 가진다. 이란을 반미 투쟁의 기수로 신비화하는 것은 이란 노동계급이 이 지배계급으로부터도 해방돼야 한다는 진실을 은폐한다.
(2) 주체의 배제: 이란 민중은 어디 있는가?
노정협의 세계관에는 결정적으로 빠진 것이 있다. 이란 민중이다. 그들의 세계관에서 이란은 ‘미국 대 이란 정권’이라는 두 국가 권력의 대결 장소일 뿐이다. 이 틀에서 이란 민중은 주체가 아니라 두 거대 체스 말 사이에 끼인 수동적 객체일 뿐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의 동력을 “국가 간의 체스 게임”이 아니라 “계급 투쟁과 민중의 역동성”에서 찾는다. 이란의 거리에서 인플레이션과 압제에 맞서 시위하는 노동계급 청년들, 2022년 ‘여성, 생명, 자유’ 시위에 나선 여성들, 독립 노동조합 건설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 이들이 역사의 진정한 주체다.
노동자연대가 이란 정권을 비판하며 미국·이스라엘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두 권력 사이에서 고통받는 이란 민중, 특히 남녀 노동계급이라는 구체적 주체를 중심에 두는 사고다. 국가 권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강요는 역사의 주체를 “국가”로만 한정 짓는 국가주의적이고 정태적인 세계관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가 비판하는 국가 페티시즘이다.
(3) 1979년 혁명의 교훈
1979년 이란 혁명의 역사는 노정협 같은 입장의 실천적 결과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투데당은 “반제국주의 세력인 호메이니를 지지한다”는 논리로 이슬람 혁명을 지지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해체하고 지지자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진짜 기회는 석유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고 쇼라(노동자 일터 위원회)를 건설하던 때 있었다. 그때 혁명적 좌파의 임무는 이 독립적 노동자 권력 기구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투데당이 호메이니의 뒤꽁무니를 좇지 않고 쇼라들이 국가 권력의 대안적 기반이 될 수 있도록 투쟁했다면, 이란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란은 1917년 당시 러시아보다 경제적으로 더 발전했고, 이란 노동계급은 권력에 도전할 자신이 있었다. 역사적 가능성은 실재했다.
(4) ‘적의 적은 친구’의 역사적 파산
노정협의 사고의 기저에는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가 깔려 있다. 이 논리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언제나 단호히 거부돼 왔다. 트로츠키는 ‘평화주의와 중국’에서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지지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일본 제국주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 줬다. 오히려 중국 노동계급 조직이 장제스에게 정치적으로 종속됐을 때 — 1926~27년 중국 혁명 당시 — 그 결과는 1927년 장제스에 의한 노동자 조직의 무력 분쇄였다. “이 경험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트로츠키는 강조했다. “이것은 두 번째로 저질러지는 범죄이기 때문에 더욱 끔찍하다”고까지 썼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는 제1차세계대전 당시에 대부분의 유럽 사회주의자들이 자국 정부를 지지하는 데 사용된 논리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은 “차르 전제주의라는 악에 맞서 싸우는 독일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독일 군국주의에 맞서는 공화국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이 모두를 거부했다. 어느 쪽이 이기든 노동자에게는 재앙이었기 때문이다. 노정협의 이란 정권 지지 주장은 100년 전 사회주의자들의 사회애국주의적 오류를 새로운 언어로 되풀이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공산당이 호메이니 노선에 동참했다가 결국에는 당이 해산당하고, 그 지도자들이 감옥에 가고, 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했던 일도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가 역사 속에서 거듭 노동계급 조직의 파괴로 귀결된 사례의 하나였다.
(5) 구체적 상황의 구체적 분석
변증법은 “구체적 상황의 구체적 분석”(레닌)을 요구한다. 현재 이란 상황에는 두 가지 주요 모순이 중첩돼 있다. 외부적 모순은 미국-이스라엘 제국주의 세력 대 이란의 국가 주권이다. 내부적 모순은 이란의 권위주의 국가 대 자유와 생존권을 갈망하는 이란 민중이다. 노동자연대의 관점은 이 두 가지 모순을 동시에 인식한다. 반면 노정협은 외부적 모순만을 절대화해 내부적 모순, 즉 민중에 대한 탄압과 압제를 은폐하고 있다. 이는 전체(총체성)의 일면만을 보고 전체라고 착각하는 일면적 사고이며, 변증법이 가장 경계하는 관점이다.
더욱이 두 모순은 서로 연관돼 있다. 이란 정권은 외부의 위협(미국-이스라엘 제국주의)을 빌미로 내부의 모순(민중 탄압)을 정당화한다. “적과 싸우는 중이니 내부 비판자들은 적의 앞잡이”라는 논리다. 노정협이 노동자연대를 “제국주의의 벗’이라고 곡해하는 것은 바로 이란 정권이 자국 반대파를 탄압할 때 사용하는 논리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노정협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권위주의적 이란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논리를 복제하고 있다.
(6) 노정협의 논리: 배중률의 오용
노정협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이란 정권을 비판하는 자는 결과적으로 미국을 돕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거짓 이분법’ 또는 ‘흑백논리의 오류’의 전형적 사례다. 이 논리 구조는 형식 논리의 배중률 — “A이거나 Not-A이다” — 을 복잡한 정치적 현실에 무리하게 적용한 것이다. 배중률 자체는 형식 논리학에서 유효한 법칙이지만, 그것을 “미국 편이거나 이란 편이거나”라는 구도에 적용하는 것은 중간에 존재하는 거대한 제3의 공간 — 억압받는 민중의 독립적 입장 — 을 원천 봉쇄하는 범주 착오다.
이분법적 사고는 반대 개념을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만 파악하고, 그것과는 다른 제3의 대안을 무시하며 복합적 현실을 간과한다. 노정협의 “미국 편 아니면 이란 편”이라는 구도는 바로 이 오류를 범한다. 현실에는 미국·이스라엘도, 이란 정권도 아닌 세 번째 주체가 존재한다. 그것은 세 권력 모두로부터 억압받는 민중, 특히 이란 노동계급이다. 이 주체를 지우는 노정협의 사고도 이분법의 발로다.
반면, 노동자연대가 취하는 입장은 이란 정권을 비판하면서도 미국-이스라엘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다. 노정협은 이것을 모순으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변증법적) 지양이다. 이것은 두 외적 선택지 — 미국 지지 또는 이란 정권 지지 — 를 모두 부정함으로써, 두 선택 모두가 부정하는 제3의 가능성, 즉 억압받는 민중의 해방이라는 고차원적 대안을 여는 것이다.
이것은 (변증법적인) ‘부정의 부정’이다. 제국주의라는 첫 번째 억압을 부정하고, 이란 국가의 압제라는 두 번째 억압을 부정함으로써, 그 둘 모두의 토대를 이루는 자본주의적 계급 관계를 넘어서는 민중 해방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의 악을 반대하기 위해 다른 악을 받아들이라는 노정협의 요구는 변증법이 아니라 실용주의다.
변증법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두 나쁜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잡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 선택지가 가진 공통된 기반(억압과 폭력)을 거부하고, 민중의 자기 결정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열어젖히는 돌파의 과정이다. 우리는 이분법에 빠지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노정협이 보지 못하는 모순적 총체성을 포착하려 애쓴다.
결론: 흔들리지 않는 두 원칙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전쟁과 관련해 혁명적 좌파가 취해야 할 두 개의 핵심 원칙을 확인했다.
첫째 원칙은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반대다. 트로츠키가 일본의 중국 침략을 두고 “강탈의 전쟁”이라고 명명했듯,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명백히 제국주의적 침략이다. 이 공격을 정당화하는 온갖 거짓말 — 이란의 핵 위협, ‘불량 국가’, ‘대량살상무기’ — 은 2003년 이라크 침략의 거짓말과 판에 박힌 듯 닮았다. 혁명적 좌파는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패퇴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제국주의의 패퇴가 중동 민중과 세계 노동계급에게 커다란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원칙은 이란 정권에 대한 정치적 지지의 거부다. 트로츠키가 장제스를 군사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독립을 유지했듯이, 우리는 이란 정권의 군사적 저항을 지지하되 그 정권을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이란 정권은 자국 민중을 잔혹하게 탄압하는 자본주의 국가다. 그 탄압과 압제에 침묵하는 것은 이란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들에 대한 배신이다.
이 두 원칙은 모순이 아니다. 그것들은 변증법적으로 통일돼 있다. 두 원칙의 공통 기반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통한 민중 해방이라는 가치다. 노정협이 이 두 원칙을 모순으로 여기는 것은, 민중(더구나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역사적 주체 됨을 국가 권력들의 게임판에서 지워 버리는 스탈린주의의 전통적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다.
역사 속의 혁명적 선구자들은 항상 양쪽에서 공격받았다. 지배 권력으로부터는 “불순분자”로, 종파주의자들로부터는 “기회주의자”나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레닌은 양쪽 제국주의에 반대하다가 “독일의 간첩’으로 몰렸다. 트로츠키는 장제스를 정치적으로 지지하기를 거부하다가 “반혁명”으로 공격받았다. 그러나 역사는 이 선구자들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노동자연대의 입장이 갖는 윤리적 우월성과 논리적 일관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적의 적이 반드시 내 친구인 것은 아니며, 적의 적을 비판한다고 해서 내가 적의 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오직 억압받는 자들의 편이다.” 이 명제야말로 인류 역사가 수많은 독재와 제국주의를 거치며 얻어낸 가장 값진 결론이며, 노정협의 곡해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응답이다.
전쟁은 계속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막혔고, 테헤란은 연기에 뒤덮였으며, 세계 노동계급은 그 경제적 여파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이 상황에서 혁명적 좌파의 임무는 반전 운동을 조직하고, 이란 민중의 독립적 저항을 지지하며, 전쟁의 계급적 성격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탈린주의자들의 이분법적 진영논리와 왜곡에 맞서, 변증법적 원칙과 역사적 교훈에 기초한 혁명적 정치를 굳건히 지켜 내는 것이다.
출처: [긴 글]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전쟁과 혁명적 전술(〈노동자 연대〉 578호, 2026-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