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신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한국외국어대 학생)
나는 지난 3월 27일 대학공공성강화를위한전국대학구조조정공동대책위원회가 주관한 대학구조조정 폐해 고발대회에 참가했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조정’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홍성학 교수가 기조발제를 했다. 홍 교수는 “많은 대학에서 전임교원확보율을 강화한다면서 저임금·단기계약의 비정년트랙전임교원을 임용하고, 전임교원의 책임 시수를 늘려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 교육과 연구에 사용해야 할 열정과 시간을 정부의 줄 세우기식 구조조정 정책에 따른 서류 작성에 쏟아 붇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고등교육의 절반 정도를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교수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교원지위와 근로조건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고 “학내 구조조정과 학과통폐합을 하는 과정에서 폐지학과 교원들과 학생들이 당하는 피해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전방위적
대학구조조정의 피해를 받고 있는 대학 구성원들도 발표했다.
한국외대는 2014년 12월 모든 학기가 끝난 시점에 갑작스레 2014년 2학기부터 상대평가 전면화를 시행했고, 이에 맞서 학생들이 점거 투쟁을 벌인 바 있다.
첫 발표자였던 나는 “당시 정부가 발표한 대학 평가 지표의 ‘학생 평가’ 부분의 핵심은 ‘성적 분포의 적절성’과 ‘엄정한 성적 부여’를 위한 제도 운영”이었는데 “한국외대를 포함한 많은 대학들이 이 지표를 끌어올리려고 상대평가를 강화”하는 등 학생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성적 평가 방식 개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너무 심해서 상대평가를 시행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교가 D등급을 받아 학생들이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는 논리로 학생들을 상대로 ‘국가장학금 받고 싶으면 상대평가 전면화를 받아들이라’며 협박한 것이다.”
“대학평가지표에는 학생 평가 항목보다 교육 여건과 학생 지원 항목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한국외대는 성적 분포보다 더 큰 점수를 차지하는 교육비환원율과 장학금지급율 모두 미달이다. 즉 학교가 재정적 지원을 통해 개선시켜야 할 문제는 회피한 채, 돈 들이지 않고 개선시킬 수 있는 항목에 집중한 것은 학생들에게 고통을 전가하기 위한 것이다.”
중앙대는 2010년부터 18개 단과대를 10개로, 77개 학과를 40개로 통폐합하는 살인적 구조조정을 감행해 왔다. 심지어 중앙대는 올해 2월 학과제 폐지와 단과대별 광역화 모집을 골자로 하는 ‘선진화계획안’을 발표했다.
중앙대 인문대 학생회장 정세현 학생은 “학교 본부는 구조조정만 계획했지 폐과 대상인 학과의 사후처리에는 관심이 없”다며 “D+의무제를 실행하는 중앙대학교에서는 인원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경쟁이 심해지기 때문에 민속학과 학생들은 수강신청 때에도 듣고 싶은 수업을 못 듣고 눈치를 본다”고 했다. “군대를 다녀오면 수업조차 듣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정세현 회장은 “학교 본부가 불도저같이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계획하는 사업에 따라 학제를 개편하여 취업에 유리한 학과의 인원수를 늘리고 취업이 잘 안 되는 학과의 인원수는 줄여,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함”이라고 꼬집었다. “학교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학생들이 피해를 받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건국대는 예술디자인대학의 영화학과-영상학과, 공예학과-텍스타일 디자인학과를 각각 하나의 과로 합치고 4개 과 전체 정원(1백30명)을 1백5명으로 감축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이 날 건국대 사례를 발표한 정다운(영화과 3기) 씨는 “취업률을 기준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은, 취업조건과 시장 상황이 현저히 다른 예술대학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 주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특히 “학교의 이번 결정은 빈곤한 교육 철학과 원칙 없는 학교 운영의 전형”이라며 “인문학, 자연과학, 예술 등 흔히 말해 ‘돈이 되지 않는’ 공부에 대한 경시와 탄압이 대학 사회에 만연해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서비스지부 한혁 조직국장은 “대학들은 말끝마다 ‘학교가 어렵다’를 되내이[며] 쉴새 없이 구조조정의 칼날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날리고 있다”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인덕대 등은 “임금을 동결 혹은 삭감하던지 해고를 받아들이던지 선택하라”며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있다. 서울여대는 “경비노동자 37퍼센트를 해고했는데 [학교 측은] 화장실 휴지도 아끼고 있다고 자랑했지만,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재단 보유금이 대학을 위해 얼마나 사용될지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진리의 상아탑이 자본의 황금탑으로 바뀌기 전에 대학노동자에서 교수노동자까지 단결하고, 노동자와 학생이 연대하여 광기어린 신자유주의 대학 구조조정을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전대학 박정희 교수는 “기전대학은 특성화하겠다던 학과들을 모두 폐과시켰다”며 “폐과 교수들에게는 퇴직 압력이 계속 되고” 실제로 “외국어 계열 교수들은 수업을 배정 받지 못해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퇴직하기로 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교가 폐과를 하면, 해당 과 교수는 자연 해직 수순을 밟는 비참한 현실인 것이다.
시간강사의 피해 사례도 상당하다. 대구대는 교육중점교원(강의전담교수로, 일반 전임교수가 받는급여의 3분의 1에서 2분의 1을 받음) · 연구중점교원의 채용과 더불어 기존 교양과목을 교양대학 중심으로 개편하면서 많은 시간강사들을 해고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대구분회 조합원의 경우, 5학점 이상을 강의하는 시간강사 비율이 무려 15퍼센트나 감소했다.
조선대는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평가 지표인 전임교원확보율과 전임교원강의담당비율의 ‘적정선’ 유지를 위해 2년 계약 비정년트랙인 강의전담전임교원을 채용하고 시간강사들을 해촉했다.
대학 직원들이 바라본 대학구조조정의 실태도 심각했다. 2014년 8월 폐쇄당한 한 전문대학에서는 학생들은 인근의 대학으로 편입됐으나, 교수와 직원들은 전원 해고됐다고 한다. 또 다른 대학에서는 임금삭감, 업무량 및 강도 증가로 자의 및 타의로 실직하여 교·직원 총 13명(교원 9명, 직원 4명)만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한다.
근로조건 문제도 심각하다. 지방의 한 대학은 임금인상 억제를 위해 호봉제인 임금체계를 연봉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서울의 한 대학은 2년 사이에 직원 1백여 명 중 20여 명이 명예퇴직 했으나, 신규채용을 억제하고 있어 직원들의 노동 강도가 매우 높아졌다. 특성화사업과 대학구조개혁평가와 관련된 업무가 폭증해 퇴근 시간이 밤 10시를 넘기기 일쑤이고 주말 근무도 빈번하다고 한다.
대학 구성원들을 경쟁과 고통으로 떠미는 대학구조조정은 폐기되어야
박근혜 정부는 2015년 4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대학구조조정을 꼽았다. 정부는 ‘대학 퇴출’을 용이하게 만드는 대학구조개혁법안을 4월 안에 국회에서 처리하려고 한다.
대학구조조정 폐해 고발대회가 열린 날 아침, 정부는 대학구조개혁법안을 4월 안에 처리하겠다는 의사를 더 강력히 표명했다. 그리고 우려스럽게도 고발대회를 공동 주최한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박홍근 의원은 이 날 대회에 불참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개혁’ 과제 안에는 노동자, 학생들을 위한 개혁 따윈 없다. ‘평가’라는 명목 하에 노동자, 학생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책임전가만 있을 뿐이다.
정부가 나서서 모든 대학에 고르게 재정 지원을 하고, 책임지고 고등교육의 질을 끌어올리고, 정부와 기업이 양질을 일자리를 만들도록 요구해야 한다.
며칠 전 한양대에서는 상대평가 전면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공동행동이 있었고, 오늘 건국대에서는 학과 통폐합과 구조조정에 맞선 학생들의 총회가 진행됐다. 이런 투쟁들이 각 대학들의 투쟁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구조조정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투쟁이 되도록 해야 한다.
4월 3일 4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잘못된 대학정책을 바꾸는 대학생 퍼레이드 – 나쁜 대학정책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에 함께 참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