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권을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면서 미국·이스라엘의 전쟁을 반대해야 한다

트럼프의 이란 공격은 그가 지지자들에게 약속한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는 끝없는 전쟁일 것이다)의 최신 라운드다.

트럼프는 이란 정권 교체를 노리며 전쟁을 일으켰고, 트럼프와 협공하는 이스라엘은 이란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헤즈볼라 등 적대자들을 분쇄해 지역 판도를 바꾸고자 한다.

그들이 일으킨 전쟁에 중동 11개국이 휘말렸고, 불안정이 커져 중동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전쟁이 성공하면 팔레스타인인들과 평범한 중동인들이 더 궁지로 몰릴 것이다 ⓒ조승진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일각에서는 이란 정권의 두 달 전 대학살에 눈감고 이란 정권을 무비판적으로 편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역 강국을 지지해 제국주의에 맞선다는 생각이다. 노정협 같은 스탈린주의 종파는 이런 관점을 절대화해, 노동자연대를 “제국주의의 벗”이라며 비판한다.

노정협은 올해 1월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략했을 때도 마두로 정부가 반제국주의 정부라며 무비판적으로 옹호했다. 그러나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재확인”한 델시 로드리게스가 미국에 석유를 개방하자 노정협은 ‘입꾹닫’했다.

한편 그 맞은편에는 억압적 ‘신정 체제’인 이란 정권을 편들 수 없으므로 이란 정권이나 미국·이스라엘이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은 이란인들의 저항을 돕기는커녕 후퇴시킬 것이다. 심지어 반정부 세력의 우익 반동적인 부분, 즉 이스라엘 깃발을 흔들며 폭격에 환호하는 팔레비 복귀 지지자들을 고무할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반대하는 것이 가장 우선인 이유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승리하면 팔레스타인인들을 포함한 평범한 중동인들이 지금보다 더한 궁지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인들이 마주한 적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랬듯 이란인들의 목숨을 완전히 하찮게 여긴다. 미나브 초등학교 폭격은 이를 뚜렷이 보여 줬다.

지역 강국 옹호해 제국주의 맞서는 전략의 문제점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야만을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지난 2년은 이란 같은 지역 강국을 옹호함으로써 제국주의에 맞선다는 전략의 약점을 보여 줬다.

이란은 중동에서 “저항의 축”을 이끈다고 자처해 왔다. 헤즈볼라와 이라크 민병대들뿐 아니라 심지어 시리아의 범죄적인 알아사드 독재 정권도 몰락하기 전까지 그 축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란은 가자인들이 인종학살 당할 동안 싸우지 않았다. 지난해 이스라엘이 이란을 직접 공격한 후에야 비로소 이란은 이스라엘을 소극적으로 반격했다.

이는 이란 정권의 우선순위가 중동 지역 강국들 간 경쟁에서 이란 국가의 정치적·군사적 힘을 확대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란 정권은 “저항의 축”을 이용하는 한편 제국주의 열강, 러시아·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맺었다. 이란의 발달한 드론 기술력과 제조 역량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에도 도움을 줬다.

이란 정권은 이란 국가 강화를 우선해 그 부담을 이란 민중에 떠넘겨 오면서 심지어 근래에는 국내적으로도 정치적 정당성을 잃었다.

이란 정권의 손에는 특히 올해 1월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다 학살당한 수천 명의 피가 묻어 있다.

이 시위는 2009년부터 거듭된 이란 내 저항의 가장 최근 사례였다. 물가 급등과 정치적 억압에 대한 분노가 결합돼 반정부 시위가 이란에서 주기적으로 벌어져 왔다.

물론 트럼프가 다시 부과한 더 강력한 제재는 이란의 경제를 더 궁핍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란 정권은 1980년대 후반부터 지난 수십 년간 맹렬히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실패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기도 하다.

이란 정권은 공공 서비스 민영화를 맹렬히 추진하고, 일자리를 삭감하고 불안정화했다. 그러나 경제는 외려 ‘역성장’했고, 물가는 폭등했고, 빈부격차가 심화됐다.

지난해 12월 말 이후 분노한 이란 빈곤 청년들의 항의가 분출하자 정권은 권위주의적 폭력으로 대응했다. 정권에 대한 대중의 증오가 짧은 기간에 급격히 쌓여 왔다.

이 때문에 지금 이란 정권은 제국주의·시온주의 전쟁 기구에 맞선 저항으로 대중을 결집시키기 어렵다. 그럴 의지가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대량 학살한 청년 노동계급을 두려워할 테니 말이다.

이란 정권의 군사적 승리에 의존하는 전략으로는 진정으로 필요한 행위 주체를 불러내기가 어렵다.

진정 필요한 행위 주체를 동원할 전략

그러나 현재 전개되는 참상에서 벗어나고 궁극적으로 해방을 쟁취하려면 그럴 잠재력과 이해관계가 있는 진정한 세력을 동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전에는 이란의 석유·가스 노동자들이 그런 구실을 했다. 1978~1979년 이란 혁명에서 그들의 대중 파업은 당시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의 양대 중동 우방이던 팔레비 왕정을 타도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었다.

가장 억압적인 정부라도 타도할 수 있는 힘은 외세 개입이 아니라 노동계급에게 있음을 보여 준다.

지금은 그때보다 중동 자본주의가 훨씬 성장했다. 중동 경제의 핵심인 걸프 연안 지역(이란 포함)에 강력한 힘을 품은 다국적 노동계급이 대규모로 존재한다.

그들은 살인적 폭염, 빈번한 산재, 고용 불안정, 빈곤과 빈부격차 등의 고통을 공유한다. 자국 정권 지지로 얻을 것이 전혀 없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란 노동자들과 그 노동자들에게는 그 정권들 모두에 맞설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

그 노동자들이 단결하면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흘낏 보여 준 두 사례가 있다.

하나는 2011년 ‘아랍의 봄’ 항쟁이다. 미국의 역내 핵심 우방이던 이집트 독재자 무바라크를 비롯해 곳곳에서 독재자들이 몰락했다. 중동 질서가 뒤흔들리자 그 질서에 기대 있는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최대 안보 위기”(네타냐후 자신이 인정한)에 전율했다.

두 번째 사례는 지난해 이탈리아·그리스·모로코 등 지중해 여러 항구에서 손발을 맞춘 총파업과 봉쇄, 거리 행동이다. 이 노동자들은 이스라엘의 전쟁 기구가 가자지구에서 작동하는 데에 일부 차질을 줬다. 그 선두에 선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중동 출신 이주노동자들이었다.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그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설 자신감과 정치적 힘을 줬다.

역사적 사례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프랑스는 대패하고 황제 나폴레옹 3세는 포로가 됐다. 후임 공화파 정부는 수도 파리를 버리고 도망쳤다.

프로이센과 반동적 정부군에 맞서 파리를 방어한 것은 노동계급 사람들이었다. 스스로를 방어하면서 파리 민중은 파리 코뮌을 수립해 미래 노동자 권력의 해방적 잠재력을 단기간이나마 보여 줬다.

코뮌은 프로이센과 정부군의 합동 공격에 밀려 안타깝게도 단명했지만, 전쟁과 전쟁을 낳는 국제적 국가체계에 맞설 진정한 행위 주체를 보여 주는 노동계급의 기억으로 남았다.(관련 글 《마르크스21》 38호 ‘최초의 노동자 권력, 파리 코뮌’)

제국주의에 맞서는 사람들의 과제는 중동에서도, 다른 (친)서방 지역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을 단결시켜 반전 운동을 건설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출처:이란 정권을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면서 미국·이스라엘의 전쟁을 반대해야 한다〈노동자 연대〉 576호、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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