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전쟁은 제국주의적 전쟁이다. 제국주의자들과 시온주의자들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랬듯이 이란인들의 죽음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트럼프는 이란 민중에게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란 민중은 정부 장악 전에 트럼프의 미사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다.
왜 이란을 공격하는가?
미국의 이란 전쟁은 제국주의 시스템이 겪는 위기의 징후다. 이 위기는 근본적으로, 세계 최대의 군사력·경제력을 보유한 미국이 중국의 부상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는 데서 비롯한다.
미국의 패권은 쇠퇴하고 있고, 그 결과 강대국들 간 경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특히,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미중 간 갈등 격화가 두드러진다.
중동 지역에서도 미국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자본과, 중국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자본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패배한 뒤 중국은 걸프 지역 에너지의 최대 시장으로 부상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걸프 지역 원유의 38퍼센트가 중국으로 향하는 한편, 중국의 원자재·첨단기술·투자가 걸프 지역으로 유입되고 있다.
제국주의 시스템의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그런 경쟁 격화가 상이한 지역에서 물리력 충돌로 비화되고 있다. 자원 강탈,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 납치, 함포 외교, 폭격에 의한 이란 정권 교체 시도 등 자유주의자들조차 “제국주의”라고 부르는 행태들이 그것이다.
제국주의 시스템의 중심부에서 전개되는 세력 관계의 변화 때문에, 중동은 지역 강국들이 저마다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다투는 장이 됐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공격해 중동 질서를 재편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이미 그전부터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란 등을 군사적으로 공격해 왔다. 최근에는 국제적 관심이 이란 전쟁에 쏠리는 틈을 타 가자 인종학살과 서안지구 정착지를 늘리고 있다. 또, 레바논을 공격해 3월 8일 현재 400여 명을 죽였다. 그래서 이란 전쟁은 가자 인종학살의 연장선이다.
이란도 이런 지역 경쟁에 뛰어들어 왔다. 이란은 특히 2003년 이후 미국이 이라크 저항군에게 당한 패배를 이용해 지역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이란은 이라크·시리아 등과 ‘저항의 축’을 구축했다. 그러나 이란 정권이 헤즈볼라와 함께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의 민중 혁명 진압을 지원한 것은 사악한 반혁명적 구실이었다.
미국은 이란 전쟁을 통해 자국이 수십 년간 겪어 온 패배와 패권 쇠퇴를 되돌리고자 한다. 미국 전쟁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이렇게 말했다. “전투기들이
그러나 미국은 전 세계는 물론이고 이란조차 대량 살육으로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제국주의자들의 광기는 소름 끼치지만 그들의 목표는 실현 불가능한 신기루다.

난관에 봉착한 트럼프
이란은 최고 지도자를 잃은 뒤에도 반격을 하고 있다. 국가 구조가 붕괴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19만 병력의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지휘관 사망으로 지휘 체계에 타격을 입었지만 붕괴하지는 않았다. 이란 정권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미사일과 제공권의 압도적 우위를 과시하고 있지만,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이란 공격은 과거 어느 때보다 무모하다. ‘테러와의 전쟁’ 광풍이 일던 2002년 초에도 미국은 이란을 공격하려 했다. 당시 이란 인구는 6,600만 명이었다(현재는 9,200만 명이다). 그런 나라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려면 대규모 지상군 투입과 장기간의 점령이 필요했기 때문에 미국은 그 계획을 포기했다.
심지어 이란보다 인구가 훨씬 적은 이라크에서도 미국의 점령은 결국 실패했다. 그 여파로 2011~2013년 아랍 혁명이 일어났다. 역사에서 전쟁과 국내 반란은 종종 연결됐다.
지금 미국 제국주의는 2000년대보다 훨씬 더 취약하고 불안정한데도 트럼프는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이란 정권을 교체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 이래 폭격만으로 정권 교체를 이룬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그나마 우호적인 세력이 지상에 존재해 공군의 폭격과 협공하면서 작전을 편다면 모를까, 이란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융단 폭격만으로 이란 정권을 제거할 수 없다. 폭격으로 이란 지도자들이 살해돼도,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되면서 기존 정권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실제로 강경파로 알려진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이란 권력을 승계했다. 이란의 차기 지도자를 자신이 선택하겠다고 큰소리치던 트럼프에게 한 방 먹인 것이다.
트럼프가 결정적으로 간과한 또 하나는, 베네수엘라가 일종의 외딴섬에 비유할 수 있다면 이란은 중동 전역에 뻗어 있는 넝쿨과도 같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서 글로벌 자본 축적의 새로운 중심지인 걸프 지역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란 전쟁으로 걸프 국가들이 떠안아야 하는 리스크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란 정권은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30퍼센트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몇 년 사이에 걸프 지역은 에너지 분야를 넘어 동서양 교역의 대체 불가능한 허브로 변모했다. 그런데 지금 유럽·아시아·아프리카를 잇는 이 지역의 핵심 거점 공항들이 마비됐다. 걸프 연안의 왕정들은 단기전은 견딜지 몰라도 장기전은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난관에 봉착한 트럼프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냐를 두고 살 떨리는 시간이 지나고 있다. 트럼프는 상충되는 두 메시지를 동시에 내놓고 있다. 트럼프는 9일 걸프 연안 왕정들의 압박을 수용하는 듯 전쟁의 조기 종결을 시사했다. “

전술
미국·이스라엘의 전쟁을 반대하는 대중적 반전 운동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이란 정권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제국주의 체제 속에는 미국·중국·러시아 등 거대 열강 간의 경쟁만 있는 게 아니다. 이란처럼 지역 강국들도 그 경쟁에 뛰어든다. 이번 전쟁은 거대 열강과 중견 국가 간 전쟁이다. 그런데 그 지역 강국의 정권은 불과 두 달 전에만 해도 자국 민중의 시위를 유혈 진압한 권위주의 정권이다. 실로 이란 정권은 미국 제국주의에 적대적이고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을 지지함에도 자국 내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을 대등하게 비난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란 정권의 범죄에 눈감은 채 제국주의로부터 공격받는 그 정권을 편들어야 하는가?
사회주의자들은 이란 정권이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이며 억압적일지라도 결코 제국주의를 편들지 않고 제국주의-시온주의의 패배를 바라야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승리한다면 이란 대중과 이란 안팎의 소수민족들에게 더한층의 굴종이 강요될 것이며, 제국주의와 시온주의에 의해 팔레스타인, 레바논,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전 세계에서 더 많은 악행이 저질러질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융단 폭격은 결코 이란 대중의 투쟁을 고취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다시 정권을 지지하도록 만듦으로써 투쟁을 후퇴시킬 것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란 정권은 대중에게 복종을 강요할 더 큰 권위를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외세의 군사 개입에 의해서는 진정한 변화가 이뤄질 수 없다. 제국주의의 대리인인 팔레비 지지자들도 결코 변화의 주체가 아니다. 그들은 정권 반대파 중에서 가장 반동적인 부분이다.
한편, 이란 정권이 미국의 적은 맞지만 혁명적이거나 진보적인 정권이 아니다. 이란 정권은 1979년 민중 혁명에서 자신의 정통성을 찾지만, 당시에 노동계급 운동을 극렬 탄압했을 뿐 아니라 오랜 세월 자국민을 학살하고 탄압해 온 반동적인 정권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정권들이 제국주의의 공격을 받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옹호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정권들은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싸우더라도 비효과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자국의 피지배 대중과도 계속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미군의 폭격을 받아 초등학생 160여 명이 숨진 미나브의 합동 장례식에서 가난한 농민들은 이렇게 외쳤다.“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항복은 없다.” 그러나 이란 정권은 미국·이스라엘에 항전하기 위해 (베트남에서처럼) 대중을 동원하는 ‘인민 전쟁’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 이란 권력자들은 이미 확보한 국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얼마 전에 거대한 반정부 항쟁을 벌인 대중을 동원하는 것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수 있다. 그래서 이란 정권은 정규군 중심의 국가 방어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란이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는 브릭스도 전혀 효과적인 반제국주의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하메네이가 살해되고 많은 이란인들이 목숨을 잃고 있지만 브릭스는 전혀 집단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개별 국가의 성명만 있을 뿐이다.
중국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했으면서도 이를 피하기 위해 실질적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미국의 이란 전쟁을 유럽 국가들의 주의를 분산시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자신이 전진할 호재로 본다.
‘미국의 침략에 대한 억지력’이라는 다극화 세계는 딱 이 정도 수준이다.
이란 전쟁은 단발성 사건이 아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위기 대응책에는 혼돈과 죽음이 내장돼 있다. 전쟁과 폭력은 언제나 자본주의의 본질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인 양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는 알 수 없다. 트럼프는 과거 그 어떤 행보보다 거대한 전쟁의 불씨를 댕겼기 때문이다. 현재의 전쟁이 지리적으로 어디까지 확대될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이란 공격은 걷잡을 수 없는 지역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전쟁이 격화될수록 트럼프는 동맹국들에 협력 요청을 할 것이다. 영국·프랑스·독일은 직접 참전하지는 않겠지만 미국과 협력해 이란의 반격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주한미군 전력은 이미 대규모로 차출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중동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란 전쟁이 장기화되면 트럼프는 십중팔구 한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할 것이다. 〈조선일보〉는 벌써부터 트럼프의 ‘지원 청구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무기 지원 등을 하되 파병까지 가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기 지원도 미국의 대량 학살을 지원하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레바논·팔레스타인에서 벌이는 학살에서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은 얻을 것이 (고통과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전쟁과 학살을 지원하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지옥문을 열었지만, 국제적 반전 운동도 시작됐다. 미국·영국 등 서방 나라들뿐 아니라 레바논·이라크·예멘·파키스탄 등 중동과 서아시아에서도 반전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중동의 반전 운동이 중요하다. 걸프 연안의 정권들은 자국(정확히 말하면, 국내 미국 대사관과 기지들)이 이란에 의해 공격받는데도 직접적인 군사 행동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군사적으로 협력했다가는 노동자와 빈민들의 반란에 직면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한국 같은 친서방 나라들에서의 반전 운동은 구미와 중동 지역에서 대중이 투쟁에 나서도록 자신감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출처: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전쟁: 제국주의론의 관점 (〈노동자 연대〉 576호、 2026-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