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정
2021년 5월 25일은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1주기다. 조지 플로이드는 지난해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州)에서 경찰에게 체포되던 중 목이 짓눌려 질식사했다. 그는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가 경찰에게 제압 당하며 외친 말 “숨을 쉴 수가 없다(I can’t breathe)”는 이후 전국적으로 번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운동’의 주요 구호가 됐다.
왜 조지 플로이드는 목숨을 잃어야만 했을까? 백인 경찰들은 그가 숨을 쉴 수 없어 의식을 잃던 것을 알았음에도 왜 폭력을 멈추지 않았을까? 미국에서의 흑인 인종차별 역사는 어떻게 흘러 왔을까?
흑인 인종차별, 흑인 민권 운동(인종차별 없는 동등한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운동)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미국의 진보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였던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하워드 진, 유강은 역, 이후, 392쪽, 16,500원) 를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1부 ‘남부와 운동’에서는 1900년대 중후반의 흑인 민권운동사를 다룬다. 2부 ‘전쟁과 평화’에서는 1955년부터 1975년까지 20년 동안 베트남 전쟁에 항의해 들불처럼 번진 반전 운동을 소개한다. 그리고 3부 ‘풍경의 변화’에서는 저자의 일대기를 간략히 다룬다. 자신의 의식이 어떻게 변했고, 왜 억압과 차별에 맞선 운동에 뛰어들게 됐는지를 설명하면서 직접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가 직접 운동에 뛰어 들어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고 생생하게 다룬다는 것이다. 또한, 흑인 민권 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등을 소개하면서 인종차별·빈부격차·가난·여성차별·성소수자의 인권 등이 서로 연결돼 있고, 그렇기에 함께 연대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역설한다.
처절하지만 빛났던 흑인 민권 운동
저자는 1956년~1963년에 남부의 스펠먼 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로 지내며 흑인들의 민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의 고문 역할을 하며 지역의 학생, 청년들과 운동을 조직했다. 그가 남부에서 지낼 때 겪은 크고 작은 흑인 민권 운동 사례들을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아마도 흑인 민권 운동이라 하면 브라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먼고메리 버스 보이콧, 앉아 있기 운동, 자유 승차 운동, 버밍엄 시위, 워싱턴 대행진 등이 떠오를 것이다. 남부의 학생들과 여러 운동을 기획하고 참여했던 저자는 이런 주요 사건뿐 아니라 아무리 작은 행동이라도 사회 변화의 보이지 않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소개한 스펠먼 학생들의 ‘앉아 있기 운동’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미국 남부의 식당에서는 백인과 흑인 자리가 분리돼 있었다. 학생들은 식당이 시작할 때 백인 자리를 차지하고서 꿈쩍도 하지 않는 식으로 저항했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기 운동’에 동참했고,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저자가 살던 지역의 백화점과 식당들이 인종 분리 정책을 없애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집단적 저항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다.
“장기적 변화를 응시해야 한다”
흑인 인종차별로 벌어진 한 사건도 인상적이다. 1946년, 조지아주(州) 베이커군에서 한 보안관이 흑인 남성을 수감하고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곤봉으로 머리를 수차례 구타해 살해했다. 그로부터 74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조지 플로이드가 비슷하게 사망했다. 오늘날 미국에서 공식적인 인종 분리는 사라졌지만, 인종차별과 빈곤, 경찰의 폭력은 여전히 미국 흑인들의 삶과 뒤엉켜 있다.
이런 현실에서도 저자는 비관주의에 빠지지 말고 “장기적 변화를 반드시 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운동은 많은 ‘패배’를 당할지도 모르지만, 투쟁의 과정에서 낡은 질서의 힘은 부식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생각은 변화하게 된다. 저항자들은 일시적으로 패배하지만 분쇄되지는 않으며, 반격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다시 일어서고 기운을 얻어왔다.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으려면, 바로 이러한 장기적인 변화를 반드시 응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관주의는 자기 충족적인 예언이 된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 의지를 무력하게 만듦으로써 자기 자신을 재생산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달리는 기차(인종차별)를 그대로 두지 않고 멈추려는 BLM 운동이 강렬하게 벌어졌다. 트럼프와 우파들은 경찰과 군대를 투입해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거대한 물결을 짓밟아 없애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으로 확산됐다.
저자는 이 책 제목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미 사태가 치명적인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여기서 중립적이라 함은 그 방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차별과 억압의 뿌리에는 경제적 이익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국가와 이 사회 부의 대부분을 가진 이들은 차별과 억압을 지속하는 것에서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 기관인 사법부·군대·경찰은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대중을 억압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오늘날은 팬데믹·경제 위기·기후위기라는 3중의 위기로 점철돼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위기 속에서도 지배자들은 인종 간 이간질을 계속해 평범한 민중들이 서로를 적대시하게끔 조장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군대와 경찰까지 동원하면서 말이다. 우리에겐 이 위기에서 “중립”이 아닌 저항이라는 선택지가 필요하다.
이 책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인종차별에 맞선 운동과 여기에 헌신한 사람들의 경험은 이런 선택의 자신감을 줄 것이다. 많은 청년, 학생들이 이 책을 통해 “열정, 희생, 용기와 연대 정신”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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