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혁(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오늘날 한국 사회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됐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하는 청년・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나왔습니다. 해방부터 코로나19까지, 착취와 차별에 맞서 싸운 역사를 담은 ⟪최근 한국 현대사 – 해방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역사유물론으로 보기⟫(김동철, 김문성 지음, 책갈피, 640쪽, 28,000원)입니다!
먼저 이 책의 특급 매력 중 하나는 가장 최근의 역사까지 다뤘다는 겁니다. 한국 현대사를 다룬 책들 대부분은 2000년대 이후의 역사를 자세히 다루지 않습니다. 시중의 한국 현대사 책들은 대개 1945년 해방부터 1980년대까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죠. 1990년대부터 2000년대와 2010년대는 굵직한 사건들 위주로 간단히 짚고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1990년대 이후의 역사를 다룬 부분이 책의 절반을 넘습니다. 여느 한국 현대사 책들과 달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심지어는 문재인 정부 시기까지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우리 2030세대 중에는 학교 수업이나 책에서 1940~1980년대 역사를 한 번이라도 배워 보거나 읽어 본 사람은 꽤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태어난 뒤인 1990년대 이후의 역사를 제대로 배울 기회는 많지 않았죠. 직접 살아 온 시기이지만 어렸을 때라 기억이 없고, 학교나 책에서는 잘 다루지 않습니다. 이 책은 ‘90년대생’들이 나고 자란 ‘최근 한국 현대사’를 다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1990년대 이전의 역사를 소홀히 다루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1990년대부터 2020년까지의 역사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해 1940~1980년대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에도 많은 공을 들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라면서 왜 세월호 참사나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나요?” 하고 묻자, “그것을 설명하려면 짧게 잡아도 1945년 해방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데요”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합니다. 2020년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을 70년 넘는 한국 현대사라는 큰 흐름 위에서 설명해 주는 것이죠.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루는 각 시대와 역사적 사건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 책이 보여 주는 역사는 우연히 벌어진 각각의 사건들이 그저 한 데 모여 이뤄진 것이 아니라, 마치 원인과 결과가 분명히 드러나는 한 편의 개연성 높은 이야기와 같습니다.
그 이야기는 대통령, 기업가, 뛰어난 학자처럼 높으신 분들 관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노동계급 관점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노동자, 농민, 빈민 등 피억압 계급의 입장에서 한국 현대사를 바라 본 책은 몇 편 나왔습니다. 그런 책들은 주류 역사가 잘 다루지 않는 억압과 차별에 시달려 온 민초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억압받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을 넘어, 한국의 노동계급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해 왔고, 그렇게 변한 그들이 어떻게 역사를 움직여 왔는지 보여 줍니다. 그리고 노동계급이 앞으로도 역사를 바꿔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착취와 억압과 차별이 가득한 계급 체제, 즉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서 노동자 계급의 구실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역사 왜곡의 해독제
이 책은 난무하는 역사 왜곡들을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낱낱이 반박합니다. 우파나 민주당 모두 자신들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역사를 왜곡합니다. 우파는 미국, 이승만, 박정희, 재벌 기업가들 덕에 한국이 이만큼 발전했다고 말합니다. 민주당 세력은 민주화 운동의 계승자임을 자임하면서,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 덕에 한국이 민주주의를 이뤄내고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하죠.
노동자들의 눈으로 봤을 때 둘 모두 진실이 아닙니다. 저자들은 친일과 독재 세력의 후예인 우파의 역사 왜곡을 가차없이 반박하고, 민주화 운동 역사 속에서 민주당이 얼마나 소심했고 심지어 어떤 방해를 해 왔는지, 민주당 정부가 노동자와 서민들을 어떻게 옥죄어 왔는지 꼼꼼히 지적합니다. 이 책은 양대 지배 세력의 역사 왜곡에 대한 노동계급의 대답입니다.
우리 세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세대라고 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걱정, 불안, 우울, 분노에 짓눌려 사는 것이 우리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나라, 이 사회, 이 시스템이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 됐는지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이런 현실을 변화시킬 열쇠도 제시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쓴 ⟪미국민중사⟫나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이 쓴 ⟪민중의 세계사⟫의 한국 현대사 버전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꽤 두껍지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현대사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라 쉽고 재미있습니다. 이 사회가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청년・학생들, 또는 이 사회가 화끈하게 변하길 바라는 청년・학생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