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4일 늦은 밤 ‘아로새김’ 정경대 학생회(이하 정경대 학생회)는 학교 당국이 책임지고 학생들에게 교양관을 대관해 줄 것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단과대 상관 없이 팀플할 공간, 세미나할 공간이 없어 카페를 전전하는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정경대 학생회의 교양관 대관 요구는 고려대 학생들 모두에게 정당한 요구다.
정경대에는 18개의 학회들이 있다. 이 학회들은 현재 자유로이 학문을 탐구할 공간이 불안정해 안정적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정경대 학생들 뿐일까. 다들 한 번쯤 팀플이나 세미나 공간을 구하기 위해 고생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각 단과대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단과대 건물만 사용해야 하는가? 정말 돈을 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대관해 주고 싶은’ 공간이 부족한 것이다. 깨끗하고 안전하면서 정규 수업 직후 비어있는 건물이 있는데 왜 학교 당국은 빈 강의실 대관을 허하지 않는가?
이는 학교의 우선순위가 학생들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교는 편의점, 카페, 화장품 가게 등 상업 시설에 자리를 줬다. 중앙광장 뿐만 아니라 학교 곳곳에서 상업시설을 찾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학생들이 방과 후 세미나 또는 토론 모임 등 자발적인 활동을 펼치는 공간은 제대로 제공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대학이 교육 기관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학교 당국이 학생들에게 공간을 더 적극 제공해야 함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세미나나 토론 등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공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의 교육권을 침해 받는 것이나 다름 없다.
또한 고려대 재정의 대부분은 학부와 대학원의 학생들이 낸 등록금에서 나온다. 건물 사용 권한을 학교가 틀어쥐고 있으면서, 학교 당국의 재정을 지원하는 학생들의 공간 대관에 제약을 거는 것은 옳지 않다. 학교가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다면 상업시설을 유치하기보다 팀플할 공간, 세미나할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즉, 공간 부족은 학교 당국에 책임이 있다.
그동안 학교 당국은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공간을 ‘그냥’ 보장하지 않았다. 2001년 학교 당국은 교양관을 신축하면서 문과대 자치공간을 보전해 주겠다고 학생들과 약속했지만 이를 어겼다. 그러자 학생들은 대중집회를 벌이는 등 자치공간 보장을 요구하며 맞서 싸웠다. 그 결과로 지금의 홍보관이 있을 수 있었다. 2003년 삼성백주년기념관이 신축될 당시 학생들이 건물 도면을 받아보니 열람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학생들이 공부할 공간은 고려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백주년기념관 열람실은 2003년 말 교육투쟁의 성과로 생긴 것이다. 최근 2010년에 사범대가 일방적으로 사범대 학생들의 자치공간인 사대분관을 철거하려고 했을 때도 투쟁한 사범대 학생들이 있었기에 라이시움 5층을 대안 공간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다.
공간 부족의 문제는 정경대 학생들을 포함해 많은 단과대 학생들이 겪고 있는 만성적인 문제다. 총학생회를 비롯해 중운위원들이 천막에 지지방문을 간 것은 반가운 일이다. 총학생회의 교육투쟁 실천단도 교양관 대관 요구안을 추가했다고 한다. 정경대 학생회가 중심이 되어 요구하고 있는 교양관 대관이 현실이 되려면 단과대 구분 없이 더 많은 학생들이 함께 학교에 요구해야 한다.
학교 당국의 잘못된 우선순위 때문에 정경대 학생들이 농성을 할 정도로 학생들은 절박하다. 학교 당국은 공간 부족에 대해 책임지고 학생들에게 교양관을 개방해야 한다.
정경대 학생회의 천막 농성을 적극 지지하자!
2016. 03. 18.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