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염소시지’, 단지 유럽 일부 국가만의 문제일까?
최근 영국공중보건국(PHE)은 “E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영국인이 2010년 3백68명에서 2016년 1천2백43명으로 급증했다”며 그 원인이 네덜란드·독일산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와 햄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 테스코가 공급한 제품이 문제가 됐다.
‘간염소시지’ 논란이 일자 한국 식약처는 유럽산 돼지고기 가공품 일부 제품의 유통과 판매를 잠정 중단시키고, E형 간염 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E형 간염은 단지 수입 제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질병관리본부가 2016년 6월 29일부터 12월 28일까지 진행한 정책연구용역사업의 연구 결과(우리 나라 간염관리대책 평가 및 개선 방안 연구)를 보면 국내 돼지의 50~60퍼센트가 E형 간염에 감염돼 있다. 고양이 8.7퍼센트, 굴 8.1퍼센트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된 바 있다.
E형 간염은 보통 오염된 물을 통해 전염되는 수인성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현행 국내법도 E형 간염을 수인성 감염병으로만 규정한다. 그러나 최근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발생하는 E형 간염은 동물과 사람의 접촉이나 육가공품 섭취를 통해 감염되고 있다. 위 질병관리본부의 연구 보고서도 “E형 간염이 인수공통감염의 위험이 존재함에도 단지, 수인성 감염병으로만 지정되어 있어서, E형 간염이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역학적으로 공통된 감염원을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2012년에 진행된 ‘도축장 종사자 대상 인수공통감염병 감염실태조사’에서도 검사 대상자 1천8백82명 중 6백36명이 E형 간염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축장 종사자 중 3분의 1이 E형 간염 바이러스와 접촉한 적이 있다는 얘기다. 작업 중 가축의 피나 분비물이 입이나 몸에 묻기 때문이다. 도축장 80곳 중 조사에 응한 79곳 전부에서 E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보유자가 나왔다.
그보다 앞선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1995년 병원 2곳에서 모은 한국인 96명의 혈청을 검사한 결과 17.7퍼센트가 E형 간염 바이러스 항체를 보유하고 있었다. 2003~04년 단일 건강검진센터와 병원에서 모은 한국인 3백61명의 혈청에서도 E형 간염 바이러스 항체 양성률이 11.9퍼센트나 됐다.
보고서들을 종합해 볼 때 E형 간염은 국내에도 상존하는 질병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이 질병에 대한 체계적 관리와 조사가 부족해 대처 방안도 마련돼 있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단지 유럽산 소시지를 반입시키지 않는 것으로 제대로 된 조처가 됐다고 볼 수 없다.
JTBC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2007년에도 “E형 간염의 현황·실태를 면밀히 분석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런데 이번 간염소시지 논란 때 제출한 보도자료도 10년 전과 내용이 거의 같았다. 지난 10년간 E형 간염에 대한 별다른 조처가 없었던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예산 부족, 위험성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다고 답변했다.
E형 간염은 대다수에게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다. 그러나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경우엔 치명적일 수 있다. 어린 아이나 노인, 임산부, 장기이식환자 등에겐 급성 A형 간염과 다를 바 없이 위험하다. 따라서 E형 간염도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하고 역학조사를 비롯한 실태조사를 면밀히 할 필요가 있다.
백신 개발도 필요하다. E형 간염은 현재 상용화된 백신이 없다. 주로 저개발 국가에서 유행하는 병이라는 사실이 백신 개발이 더딘 이유인 듯하다.
이윤 중심 축산업의 근본적 변화
인수공통전염병을 예방하려면 가축의 인수공통전염병을 근절시켜야 한다. 따라서 동물이 질병에 노출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되는 공장식 축산업 하에선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것이 비용 증가로 연결돼 큰 어려움을 겪는다. 시장에 맡기는 방식으론 먹거리 안전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살충제 계란’, ‘E형 간염 소시지’, ‘햄버거병’ 등 위험한 먹거리는 이윤을 중심으로 한 생산 방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반복될 것이다. 다수가 먹는 식품은 공공재로 보고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싸고 안전한 식품을 공급해야 한다. 밀집사육을 중단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드는 생산 방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