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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월 28일부터 31일까지 학내 커뮤니티(‘이화이언’)의 주도로 시작된 평생교육 단과대학(‘미래라이프 대학’) 폐기를 위한 본관 점거 시위에 참여했다. 비록 재학 기간이 1년 반밖에 되진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방학중임에도 시위에 참가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나보다 학교를 더 오래 다닌 10학번 선배, 심지어 05학번 선배조차도 학내에서 몇백 명이 며칠간 참여하는 시위는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했다.
학내 커뮤니티에 7월 27일 오전 12시경 한 학생이 쓴 글을 시작으로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계획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가 모아졌다. 이미 그 전부터 최경희 총장의 독단적인 학교 운영으로 인해 화가 날 대로 난 학생들에게 이 사건은 발화점 같은 구실을 했다. 대학평의원회 교수들과 대치하며 본관 점거 시위를 시작했고, 경찰 1천6백 명이 투입돼 대학평의원회 교수들이 빠져 나간 뒤에도 본관 점거 투쟁은 닷새째 진행 중에 있다.
나는 시위가 시작된 2시부터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처음부터 참여한 친구는 그 다음날까지 함께하며 많은 재학생과 졸업생의 모금으로 구비된 물품들과 음식 등으로 끈끈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내게 전해 줬다. 혹여 학벌주의적 관점으로 미래라이프 대학을 폐기하라는 주장이 나올까봐 우려했지만 그런 일도 없어서 다행이라 말했다.
그런데 7월 30일, 일이 터지고 말았다. 본관 앞에서 진행하는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학생들이 10학번 양효영 선배의 발언을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막은 것이다. 이어서 일부 시위 주도자들의 주장으로 총학생회장은 운동권을 개입시키지 않겠다며 굴복했다. 그 과정에서 양효영 선배의 발언 요구는 세 차례나 무시당했다. 이화이언 게시판에 인권침해 수위의 글들이 올라오고, 시위 주도자들의 철저한 냉대 속에서 밤을 샌 우리는 결국 ‘운동권’ 퇴출에 대한 거수 투표를 거쳐야 했다. 제 44대 인문과학대학 운영위원회였던 불문과 졸업생의 찬성발언과 양효영 선배의 반대발언 후 거수 투표를 진행했고, 예상대로 2백 표 이상의 찬성과 1표의 반대, 7표의 기권으로 선배와 나는 시위 현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시위를 결정한 날 자정부터 (지금은 삭제된) 운동권을 배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글이 게시된 것을 시작으로 ‘운동권’에 대한 학생들의 견제와 반감이 있음을 알고는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우리에게 정치색이 없다’, ‘운동권이 시위를 주도하면 미래라이프 폐기를 원하는 순수한 이화인의 의도가 변질될 것’이라며 학생들 사이에서 ‘운동권’ 배제 여론을 확대시켰다. 또한 교원 임용고시 등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참여한 만큼 정치색을 입힐 운동권은 이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빠져달라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 시위가 정치적 · 사회적 사안이 된 만큼 ‘이 시위엔 정치색이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서대문구 우상호 의원(더민주당)에겐 도움을 요청하는 등 특정 정치권에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좌파를 배제시키는 그들의 행동은 이중잣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덧붙여서, 퇴출 찬성 발언을 한 불문과 졸업생은 “타학교 학생회의 지지 성명서는 필요 없다”며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재학생과 졸업생이 한마음 한 목소리로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지, 정치적 목적을 가진 사회적 연대는 받지 않겠다”고 발언했는데, 여러 단체들과의 연대가 필요한 이 시점에서 시위를 고인 물처럼 정체시키려는 그들의 논리는 굉장히 우려스럽다.
아쉽게도 본관에서 학생들을 설득하진 못했지만, 이화이언 내에서도 ‘운동권’ 배제에 대한 이견이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앞으로 좀더 건강한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연대의 중요성을 이 경험을 통해서 더욱 느꼈고, 계속해서 싸울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루빨리 학생들의 오해가 풀리길 바란다. 학교 당국은 비민주적 절차로 결정된 미래라이프 대학을 폐기하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