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한국외국어대학교 대나무숲’(SNS 익명 게시판)에 동성애 혐오 발언 강사에 대한 폭로가 있었다. 해당 수업 수강자로 추정되는 한 학생은 한 강사가 수업 시간에 “동성애자는 치료받아야 할 후천적 정신병, 동성애자는 100퍼센트 에이즈 환자”라는 발언을 했다며 “손이 벌벌” 떨렸다고 그 때 상황을 전했다.
이 발언의 당사자는 KBS PD출신의 강사다. 또 다른 수업 수강생인 익명 제보자에 따르면, 그는 “동성애자의 100퍼센트가 에이즈 환자”라며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태희 변호사가 쓴 글이나 동영상을 한 번 보고” “리포트를 동성애로 쓰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더불어 “나는 동성애를 반대하고 … 에이즈 환자들이 보복 심리로 누구를 타깃 삼아 공격할지 모르는 세상”이라는 망언을 쏟아냈다.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강사의 수업을 견딜 수 없다는 한 학생의 제보에 지난 일주일간 학생회, 동아리, 학내 단체 등이 연이어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특히 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매우 옳게도 ’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각 단대 학생회 대표자들의 회의체) 일동’ 명의로 동성애 혐오 발언 강사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단대 학생회 10여 곳, 한국외대 성소수자 모임 Q사디아, 중앙동아리 마르크스 정치경제학회 왼쪽날개, 중앙사회과학동아리 이퀄리버티, 한국외국어대학교 생활자치도서관, 노동자연대 외대모임, 외대학생행진, 정의당 외대학생위원회 등이 연명한 공동 성명서도 발표됐다. 학생들은 학교 당국의 진상 조사, 진상이 밝혀질 시 강사의 공개 사과, 해당 강의의 강사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차별과 혐오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해당 수업이 열리는 날이었다. 당일 오전에 학교 당국과 강사가 면담했다고 하나, 학교 당국은 해당 수업이 있는 오후 3시가 지나서까지도 학생들에게 진상 조사 결과를 전달하지 않았다.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일부 단과대 학생회장들, 한국외대 성소수자 모임 Q사디아, 중앙동아리 마르크스 정치경제학회 왼쪽날개, 한국외국어대학교 생활자치도서관, 노동자연대 외대모임 등 학생 10여 명은 해당 강의실에 찾아가 공동 성명서를 배포하고, 강사의 망언이 수업과는 하등 관계없는 부적절하고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이라는 것을 폭로했다.
그리고 학교 측이 면담 결과를 공유하지 않아 공동 성명서 배포 활동에 동참한 학생들은 강사에게 즉석 면담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강의실 문 밖에서 학생들은 강사에게 면담 결과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질의했다. 강사는 “강의 중 한 말이라 기억이 다 안 난다”면서도 그런 발언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 거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인터넷 강의에서 잠깐 들은 내용 중 일부분”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 발언을 가지고 사람이 죽었습니까”라며 “동성애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 이르다”, “(자신의 에이즈 관련 발언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있냐”, “(성소수자 학생이 있다면) 치유 상담을 해야 한다”는 망언을 쏟아 냈다.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동성애 혐오 발언이 왜 잘못됐는지도 모르는 강사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학생들은 “그런 의도(차별 · 혐오)가 아니라면서 사실도 아닌 ‘에이즈’를 근거 삼은 저의가 뭐냐”, “혐오와 차별에 표현의 자유를 허용할 수 없다”, “강단을 이용해 차별을 조장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분노했다.
강사는 수강 학생들에게 직접 물어보겠다며 대화 도중 학생들의 말을 무시하고 강의실에 들어갔다. 학점이 걸려 있어 익명 제보를 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은 안중에도 없이, 학생들을 취조하겠다는 양 말이다. 항의에 참가한 학생들도 강의실 뒷편으로 들어가 침묵한 채 그의 대응을 살폈다. 그는 수강 학생들에게 “사실 동성애가 우리 사회에 아직 용납돼선 안될 부분”, “이건 내 개인적 의견이고 해당자가 상처를 입었다면 사과 드리겠지만”, “개인적 양심으로는”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했다. 끝까지 그는 혐오와 차별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학생들은 다시 한 번 강단에서 동성애 혐오 발언을 쏟아낸 강사에게 “교수는 개인이 아니라 교육자다”, “왜곡된 사실에 기반해 개인의 생각이라고 포장하지 말라”, “차별과 억압은 민주주의가 아니고, 표현의 자유도 아니다”며 항의했다. 강사는 학생들의 온당한 항의에 못 이겨 결국 수업을 휴강하고 교실에서 도망치듯 나갔다.
강사는 강의 수강생들 중 불만 있는 사람에게 직접 의견을 들어 처리하겠다고 했다. 학점 때문에 강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수강 학생들의 처지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혐오 발언은 단지 그 강의를 듣는 학생들 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에서 공공연히 동성애 혐오가 부추겨지는 것은 차별과 억압의 문제이고 따라서 우리 모두가 맞서 싸워야 할 문제이다. 대학 내에서 이런 혐오 발언이 결코 용납돼선 안 된다. 물론 수강 학생들도 혐오 발언을 반대한다고 강사에게 직접 용기 있게 제기하며 함께 싸운다면 아주 좋은 일일 것이다.
강사가 나간 뒤 총학생회는 수강 학생들에게 수업에 대한 익명 제보를 요청했다. 강사가 나가자 학생들 중 몇몇은 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수강 학생들은 항의 방문한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강사는 자신의 발언을 시인했으나, 여전히 자기 발언이 왜 지탄을 받아야 하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차별, 혐오를 조장하는 자를 강단에 둘 수 없다. 앞으로도 학생들은 동성애 혐오 발언 강사를 교체하라고 학교 당국에 요구하며 싸워나갈 것이다.
편견에 찌든 구시대적 논리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기독당은 한국외대 교내에 동성애 차별 배너를 걸었다(‘한국외대 학내 진보·좌파 모임이 함께 동성애 차별 선동에 맞서다’ 기사 참고). 이처럼 일부 보수 기독교 세력과 주류 정치인들은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공공연히 내뱉고 있다. 해당 강사의 논리는 그들의 ‘동성애 반대’ 논리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동성애를 ‘에이즈’, ‘정신병’이라며 질병 취급한다.
동성애에 “후천”, “선천”의 구분을 두는 것이 무의미하다. 동성애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일부다. 일부 정신 나간 우익들과 의사들은 ‘뇌수술’, ‘전기충격’ 등의 ‘전환치료’를 시도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치유”의 명목으로 성소수자들을 집단 구타하고 고문하는 것은 폭력이자 범죄다.
“동성애자의 100%가 에이즈 환자”라는 비과학적인 구시대 논리는 경멸스럽다. 2011 HIV/AIDS 신고 현황 연보(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남성 중 263명(31.8퍼센트)은 이성간 성 접촉, 218명(26.4퍼센트)은 동성간 성 접촉에 의한 감염이었고, 여성 중 이성간의 성 접촉은 41명(67.2퍼센트), 동성간 성 접촉은 보고된 바 없다. 말하자면 HIV 감염의 원인이 동성애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HIV 감염은 성적 지향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 안전한 성 행위 여부에 달려 있다.
이 사회가 ‘동성애 반대’ 논리를 체계적으로 발명해 차별을 조장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사회는 이성애 가족만을 ‘정상 가족’ 취급한다. ‘정상 가족’은 미래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구실을 한다. 정상 가족의 구실 덕에 지배 계급은 비용을 절약하며 체제를 유지한다. 노동력 재생산에 도움되지 않는 동성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체계적으로 억압받아 왔다. 더불어 경제 위기 시기에 성소수자, 이주민 등에 대한 차별은 속죄양 삼기와 분열 수단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것은 “민주 사회”에서 “공존”하는 자유로운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성애를 반대, 왜곡, 차별, 혐오하는 것은 표현이 아니라 억압의 일환이다. 억압에 맞선 학생들의 항의는 매우 정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