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이하 보안법)이 통과됐다.
홍콩 대중은 2003년에 50만 명 규모의 시위를 벌여 보안법 추진을 좌절시킨 바 있다. 이처럼 홍콩 대중이 오래전에 명백히 거부한 반민주 악법을, 시진핑 정부는 전인대 대의원들의 거수기 노릇이라는 요식행위로 처리한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홍콩 기본법(한국의 헌법에 해당)에 따른 입법 절차도 무시하고 전인대 통과를 강행했다. 미국과의 갈등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홍콩의 정치적 불안정을 단속해야 할 필요가 커진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보안법은 전인대 심의 과정에서 애초의 원안보다 더 나빠졌다. 그래서 일부 시위 참가자가 ‘국가안전을 위협’할 만한 행위를 했다고 판단될 시 시위 참가자 전체가 보안법 처벌 대상이 된다.
사상 통제법이 으레 그렇듯이 홍콩 보안법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자의적 해석과 그에 따른 처벌이 가능한 악법이다. 홍콩의 민주주의 운동이 이 법의 주된 표적이 될 것이다. 예컨대 중국 외교부 홍콩주재사무소 대표 셰펑은 지난해 홍콩 항쟁의 일부 행동이 “사실상의 테러”라고 했다. 홍콩 경찰의 폭력에 대한 시위대의 방어 행동이 이제 테러로 몰려 보안법으로 처벌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홍콩 캐리 람 정부는 ‘국가법(國歌法)‘을 입법회에서 처리하려고 한다. 국가법은 중국 국가 ‘의용군행진곡’을 모독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다.
시진핑 정부는 반대 목소리를 억누르려 군대 동원까지 시사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일부 세력이 외국 세력과 결탁해 그 나라의 국가 안보 이익을 해치도록 내버려 둘 나라가 있는가?” 하면서 홍콩 보안법을 정당화한다. 이런 주장은 한국 지배자들이 남북 분단과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운동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흡사하다.
그러나 설사 홍콩에서 누군가가 친미적 주장을 하더라도 그것이 평화적 토론과 활동이라면 처벌돼야 할 이유는 없다. 한국에서 ‘친북’적 주장을 펼쳤다고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는 것을 우리가 반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홍콩 청년과 노동자들은 보안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5월 24일 대규모 시위에 이어, 5월 27일에도 홍콩 입법회 주변에서 보안법·국가법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한편,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홍콩 보안법을 비난하고 있으며, 그리고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끌고 갔다. 트럼프 정부는 조만간 대(對)중국 제재 조처를 발표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이런 행보는 홍콩 대중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어서가 결코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홍콩 문제를 중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에서 이용할 뿐이다. 미국 정부는 홍콩 보안법은 반대하지만, 한국 국가보안법처럼 동맹국의 유사한 악법은 반대하지 않는다.
얼마 전 트럼프의 경찰이 흑인의 목을 눌러 숨지게 한 사건은 트럼프 정부의 위선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홍콩의 민주주의는 미국이나 강대국들의 입김에 좌우되는 유엔의 개입이 아니라, 홍콩 대중 자신의 저항과 중국 다른 지역에서의 노동자 연대에 달려 있다.
트럼프는 한국 정부에도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대중국 제재에 동참하라고 요구한다. 중국 정부도 문재인 정부한테 홍콩 보안법에 관한 이해를 구하려 한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내세워 온 ‘인권’과 ‘민주주의’에 진지하다면, 미국이 보안법을 빌미로 제재 등으로 개입하는 것에 선을 그으면서 동시에 홍콩 보안법이 민주적 권리를 부정하는 악법임도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침묵하고 있다. 국익, 즉 한국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우선해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시진핑·캐리 람 정부가 악법들을 밀어붙이고 탄압을 강화하지만, 홍콩 대중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홍콩에서 오는 6월 4일(톈안먼 항쟁 기념일), 6월 9일(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 1주년)에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년 전에 시작된 홍콩 항쟁이 이제 보안법 통과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홍콩 보안법 제정을 규탄하고 이에 항의하는 홍콩 대중을 지지해야 한다.
2020년 5월 29일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이 성명은 <노동자 연대> 324호에 실린 동 제목의 기사를 참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