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퀴어모임 레인의 신규동아리 의결이 또 부결됐다. 과반이 넘는 9명의 동아리 대표자들이 찬성표를 던졌지만, 3분의 2를 넘지 못해 부결됐다. 성소수자 혐오∙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레인의 신규동아리 의결이 가결됐다면, 레인 회원을 포함한 성공회대 내의 성소수자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동시에 성소수자가 아닌 학생들에게도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는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군대에서 처벌받고 일부 기독교 우익 등의 공공연한 혐오가 있는 사회적 상황을 보자면 부결이 더욱 아쉽다.
이번 의결에서 반대 또는 기권을 한 동아리 대표 일부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들을 했다.
CCC 대표자는 “장애인 동아리나 이성애자 동아리가 없듯이 특정 사회 구성원들의 모임은 소모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중략) 정기모임의 내용이 특정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면 동아리의 모임이 단순 친목 도모로 번질 수 있다” 하고 기권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장애인 동아리를 검색해 보기만해도 많은 장애인 동아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들이 그들의 모임을 만드는 것은 사회적 차별 때문이다. 마음껏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내지 못하는 차별적 현실 속에서 성소수자들이 마음 편히 교류할 수 있는 안정적 공간을 만드는 것은 충분히 지지할만한 일이다. 성소수자 동아리가 ‘단순 친목 도모’를 하는 것 역시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다른 동아리 구성원들도 자유롭게 친목을 도모하니 말이다.
한국 CCC 대표인 박성민 목사는 “동성애는 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동성애를 받아들이거나 동성애를 미화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번지는 데 일조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막아야 하고 반대해야 합니다.” 하고 말한 바 있고, CCC는 오랫동안 동성애에 대해서 보수적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성서와 19세기까지 교회 전통은 동성애를 증오하지 않았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동성애에 대한 태도도 다 다르다. 예컨대 미국 성공회 교회는 동성애자 사제들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서품을 내리고 있다.
JOY와 NUTEE 대표자는 회칙이나 형평성 등 형식상의 문제로 반대했다. 그러나 ELPIS 대표자의 말처럼 “시행되고 있는 현 회칙상 여러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나, 레인의 특수성과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걸림돌이 되는 회칙을 긴급한 사안인 만큼 무시해도” 된다. 성소수자 동아리 구성원들이 드러내놓고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의 동아리들에게 요구되는 조건들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반대하는 건 차별받는 집단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회칙과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억압 받는 사람들의 조건을 인정하며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는 것이다.
또 동아리 일도 참가자는 “(레인이) 피켓을 들고, 대자보를 붙이고, 각종 프린트물을 학교에 붙여 여론몰이를 할까 의심스럽다”며 기권했다. C.O.L 대표자도 “재논의를 요구해놓고 성명서를 쓴다는 것은 압박을 주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겠다는 의미로 보이”기 때문에 기권한다고 했다.
피켓을 들고, 대자보를 붙여 입장을 알리고,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적 권리 중에서도 가장 기본으로 여겨진다. 성명을 통해 주장을 하고 다수의 사람들을 설득해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은 민주적이고 정치적인 방식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아무 생각 없이 “여론몰이”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학생들은 그들의 주장과 활동을 보면서 판단할 능력이 있다.
따라서 레인을 옹호하는 것은 단지 성소수자들을 옹호하는 것 뿐 아니라 아니라 학생들의 자치활동과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이기도 하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노동력 재생산 부담을 이성애 개별 가족에 떠넘기고, 이런 가족 제도를 이상화한다. 그리고 그런 규범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부추겨 평범한 사람들을 분열시킨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려는 사람들은 이런 편견과 차별에 맞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이번에 레인의 정식 동아리 등록은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과반이 넘는 동아리 대표들과 총학생회를 비롯한 많은 단위들이 성소수자들을 지지했다. 그런 지지가 앞으로 성공회대 내에서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지를 넓히는 데 밑거름이 될 거라 생각한다.
2017. 06. 20. 노동자연대 성공회대모임
문의: 손영원(영어학과, 010-2900-0229)